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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식민지] 30. 징용·정신대 – 강제노동과 전시 성노예 1930년대 후반부터 1945년 패전까지,일본은 아시아 태평양 전쟁을 치르면서엄청난 인력과 자원을 필요로 했어.그 부담은 고스란히 식민지 조선에 쏠렸지.그중에서도 가장 큰 고통을 겪은 게남성들의 강제 징용과여성들의 일본군 ‘위안부’ 동원,즉 정신대 문제였어. 징용 – 전쟁터와 탄광으로 끌려간 조선 청년들처음엔 ‘모집’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데려갔어.“돈도 벌고, 나라에 충성도 하라”는 식으로 홍보했지만사실상 속임수였지. 1944년부터는 아예 징용령을 내려법적으로 끌고 갈 수 있게 만들었고,조선 청년들은 총알받이, 탄광노동자, 군수공장 인부로일본 전역, 만주, 사할린 등지로 끌려갔어. 낯선 땅, 열악한 환경, 허기, 병…수많은 이들이 돌아오지 못한 채 사라졌지. 정신대 –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들가장 고통.. 2025. 6. 20.
[일본의 식민지] 29.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 정체성 말살의 강요 1939년, 조선 총독부는“조선인도 일본 제국의 백성이니, 일본 이름을 가져야 한다”며창씨개명(創氏改名)을 본격적으로 시행해. 겉으로는 ‘자발적’이라 했지만,실제로는 사회 전반에 압력을 넣어서강제에 가까운 선택을 하게 만들었지.창씨개명 – 성씨(氏)와 이름(名)을 일본식으로 바꾸다여기서 중요한 건단순히 이름을 바꾸는 게 아니었어.‘창씨’는 가족제도를 일본식 ‘씨’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었고,‘개명’은 말 그대로 이름 자체를 일본식으로 바꾸는 것이었지. 예를 들어,‘박영식’이라는 사람이 ‘다케야마 에이시키(竹山榮識)’같은 식으로 완전히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야 했어.왜 강요했을까?이건 단순히 이름만의 문제가 아니었어.민족의 뿌리를 없애는 정책이었지. 조선인들이 자기 이름과 정체성을 잊고,황국신민으로 완전히 재.. 2025. 6. 20.
[일본의 식민지] 28.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 – 동화정책의 본질 3·1운동 이후, 일본은 조선을 총칼로만 다스리던 무단통치를좀 더 부드러운 포장으로 바꾸는 문화통치를 시도했지. 그런데 이게 시간이 지나면서조선인을 아예 일본인으로 만들려는‘동화정책’으로 점점 본색을 드러내게 돼. 그 중심에 있었던 말이 바로‘내선일체(內鮮一體)’였어. 내선일체 – 조선과 일본은 하나다?이 말은 겉보기엔 ‘같은 나라, 하나의 국민’ 같지만실상은 “조선인은 일본인에게 동화되어야 한다”는 말이었어.‘같이 간다’는 말은 결국 ‘일본에 맞춰 따라오라’는 뜻이었지.그래서 조선인에게 ‘황국신민’,즉 천황의 충성스러운 백성이 되라는 교육이 시작됐어. 학교에서는 매일 아침 ‘황국신민서사’를 외우게 했어“나는 황국신민으로서 충성하고 의무를 다하며...”이런 식의 맹세를 아침마다 강제로 암송시켰지. 아이들.. 2025. 6. 20.
[일본의 식민지] 27. 문화통치기(1920~30년대 초) – 겉보기 유화 정책 3·1운동 이후 일본은 큰 충격을 받았어.“이제 무조건 억누른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그걸 깨닫게 된 거지.그래서 일본은 전략을 바꿨어.겉으로는 ‘관용’을, 속으로는 ‘동화’를 내세우는새로운 방식의 통치를 시도하게 돼.이걸 ‘문화통치(文化統治)’라고 불러.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의 전환그전까지는 헌병이 지배하던 시기였어.총칼 들고 거리 순찰하던 시절 말이야. 하지만 3·1운동 이후, 일본은겉으로는 조선을 "문명화"하고 "선진화"시키겠다며좀 더 부드러운 방식으로 통치하는 척 했지. 그래서 총독부 헌병 중심에서 보통 경찰 중심 체제로 바꾸고,신문·잡지도 허가제로 허용했어.학교도 늘어나고, 교육 기회도 더 주는 것처럼 보였어. 언론, 출판, 교육의 ‘허용’ – 하지만 조건부였지신문? 허용했어.하지만 일본에 비.. 2025. 6. 20.
[일본의 식민지] 26.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 민중의 저항 1919년 3월 1일,서울 탑골공원에서 낭독된 한 편의 선언문이전국을 뒤흔드는 불씨가 되었어. 그게 바로 ‘독립선언서’,그리고 이 선언을 알리기 위해수많은 학생들과 민중들이 모인3·1운동(삼일운동)이야.3·1운동, 조용하지만 강력했던 시작이 운동은 처음엔 비폭력·평화적인 시위로 시작됐어.33명의 민족대표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고,젊은 학생들과 일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다”라고 외쳤지. 사람들은 태극기를 흔들고,“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며도시, 시골 할 것 없이 거리로 나왔어.전국으로 퍼진 독립의 물결그 시위는 하루 이틀로 끝나지 않았어.서울뿐만 아니라 평양, 대구, 광주, 원산, 진주…전국 1,500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고,200만 명 이상이 참가한조선 최대 규모.. 2025. 6. 20.
[일본의 식민지] 25. 무단통치기(1910~19) – 헌병·총독의 철권통치 한일병합조약 이후, 조선은 완전히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어.그런데 그 식민지 통치는 시작부터 무자비했어.이 시기를 우리는 ‘무단통치기’라고 불러.말 그대로, ‘무력으로 다스리는 시대’였지.일본은 조선을 통치하기 위해 ‘조선총독부’를 세웠어.그리고 그 총독부를 이끄는 총독은 항상 일본 군부 출신 장군이었지.첫 총독은 데라우치 마사타케, 일본 육군 대장이었어.총독은 입법, 사법, 행정, 군사까지 모든 권한을 독점했어.마치 조선 전체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황제 대리인’ 같은 존재였던 거야.그리고 그 밑에서 조선을 실제로 통제한 건 ‘헌병 경찰’이었어. 헌병 경찰의 공포통치조선인들은 당시 일본 헌병들 앞에서 말도 제대로 못 꺼냈어.왜냐면 헌병들은 ‘의심만 가도’ 사람을 잡아가고, 고문하고, 심지어 죽이기도 .. 2025. 6. 20.
[일본의 식민지] 24. 한일병합조약(1910) – 공식적 식민지화의 순간 이제 조선은 외교도, 내정도, 군대도 모두 일본에게 장악당했지.사실상 일본의 식민지가 된 상태였지만, 법적으로는 여전히 대한제국이라는 이름이 남아 있었어.하지만 일본은 아예 형식적인 이름까지 없애고, 조선을 일본의 ‘직접 지배’ 아래 두기로 결심해. 그렇게 해서 나온 게 바로 ‘한일병합조약’,우리가 흔히 말하는 ‘경술국치(庚戌國恥)’야.경술년(1910년) 8월 29일에 일어난 일이거든.이 조약의 핵심은 정말 간단하면서도 잔인했어.“조선은 일본 제국에 병합된다.”다시 말해, 조선이라는 나라가 아예 사라지고 일본의 한 지역이 되어버린 거야.이 조약은 조선 총리대신 이완용과 일본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 사이에서 체결됐어.이완용은 이미 을사늑약부터 정미7조약까지 일본 편에 섰던 인물이지.이제는 아예 나라 전체를.. 2025. 6. 19.
[일본의 식민지] 23. 정미7조약과 군대 해산 – 주권 상실의 가속화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기고 통감부까지 설치된 대한제국은, 그야말로 껍데기만 남은 나라가 됐어.그렇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었지. 일본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조선의 내정과 군사권까지 손에 넣으려고 해.그리고 그 수단이 된 게 바로 정미7조약이야.1907년, 고종 황제가 조선이 일본의 보호국이 되는 걸 막아보려고 몰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보내.전 세계 앞에서 “우린 이런 조약에 동의한 적도 없고, 일본은 우리를 불법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외친 거야.그런데 이게 일본한테 딱 걸려.일본은 고종이 ‘국제 망신’을 시켰다며 화를 냈고, 이걸 핑계 삼아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켜버려.그 뒤를 이어 순종이 즉위하게 되지.그 해 7월, 일본은 순종을 앞세워 또 하나의 조약을 체결해.이게 바로 ‘정미7조약(丁未.. 2025. 6. 19.
[일본의 식민지] 22. 을사늑약(1905) – 외교권 박탈과 통감부 설치 대한제국이 스스로 제국이라 선언하고 황제를 자처했지만, 현실은 점점 일본에게 휘둘리는 상황이었어.그리고 결정적으로 조선의 자주권을 무너뜨린 사건이 바로 ‘을사늑약(乙巳勒約)’이야.이건 1905년에 체결된 조약인데, 사실 조약이라고도 부르기 어렵지. 왜냐면… 강제로 찍은 문서였거든.1905년 당시, 일본은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있었는데 그게 바로 러일전쟁이야.놀랍게도 이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이제는 조선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완전히 몰아내게 돼.일본은 그 틈을 타서 본격적으로 조선을 완전히 통제하려고 해.그 첫 번째 큰 수가 바로 을사늑약, 즉 외교권 박탈이었지.일본은 대한제국을 국제적으로 외교할 수 없는 나라로 만들어버려.이제부터 조선은 외교를 하려면 일본을 통해서만 해야 해.쉽게 말해, 외국과.. 2025. 6. 19.
[일본의 식민지] 21. 대한제국 수립과 외교 고립 – 고종의 마지막 몸부림 1897년, 조선의 고종은 한 가지 큰 결심을 하게 돼. 바로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바꾸고,자신을 황제라 칭하는 거였어. 이건 단순한 명칭 변경이 아니라, 조선이 더는 중국의 속국이 아니며, 자주독립국이다라는 선언이었지. 한마디로 대내외적으로 조선의 자주권을 강조하려는 몸부림이었어.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배경에는 청일전쟁(1894~1895)의 여파가 있었어. 이 전쟁에서 일본이 이기면서,조선은 청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났어.외형적으로는 독립했지만, 실제로는청나라 대신 일본의 간섭이 시작된 거야. 고종은 이에 위기의식을 느끼고,일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립 제국’을 선포했어. 그리고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에서 즉위식을 올리며 스스로 대한제국의 황제로 등극했지.이때부터는 ‘조선 왕’이 아니라 .. 2025.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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