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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식민지] 30. 징용·정신대 – 강제노동과 전시 성노예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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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후반부터 1945년 패전까지,
일본은 아시아 태평양 전쟁을 치르면서
엄청난 인력과 자원을 필요로 했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식민지 조선에 쏠렸지.

그중에서도 가장 큰 고통을 겪은 게
남성들의 강제 징용
여성들의 일본군 ‘위안부’ 동원,

즉 정신대 문제였어.

 

징용 – 전쟁터와 탄광으로 끌려간 조선 청년들

처음엔 ‘모집’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데려갔어.


“돈도 벌고, 나라에 충성도 하라”는 식으로 홍보했지만
사실상 속임수였지.

 

1944년부터는 아예 징용령을 내려
법적으로 끌고 갈 수 있게 만들었고,
조선 청년들은 총알받이, 탄광노동자, 군수공장 인부
일본 전역, 만주, 사할린 등지로 끌려갔어.

 

낯선 땅, 열악한 환경, 허기, 병…
수많은 이들이 돌아오지 못한 채 사라졌지.

 

정신대 –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들

가장 고통스러운 이야기는
바로 어린 소녀들이 끌려간
‘일본군 위안부’ 문제야.

 

‘정신대’라는 이름은
원래는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여성 노동 조직”이었지만,
실제로는 강제 성노예 제도였어.

 

어린 나이에
“일본에서 돈 많이 벌 수 있다”,
“공장에서 일하면 장학금 준다”는 식의 거짓말로 속이거나,
경찰과 군이 직접 들이닥쳐 끌고 갔어.

 

도망칠 수도 없었고,
병에 걸려도 치료도 없었어.

 

전쟁이 끝나도
돌아오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
돌아온 사람들도
말 못 할 상처와 고통을 안고 살아야 했지.

 

해방 이후에도 이어진 침묵

가장 슬픈 건,
이 일이 해방 이후에도
오랫동안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이야.

 

피해자들은
“부끄럽다”, “말하면 가족에게 누가 된다”는 이유로
자신의 고통을 말하지 못한 채 살아야 했고,
일본은 오랫동안
“그건 자발적인 위안부였다”며
사실을 왜곡하거나 무시했지.

 

기억하고, 기억해야 할 이야기

징용과 위안부 문제는
단순히 ‘전쟁 중 있었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존엄성을 짓밟은 역사야.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가 이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기록하는 것,
그게 지금을 사는 우리들의 책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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