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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이야기] 르네상스와 절대왕정 5. 루이 14세와 베르사유 궁전 – 태양왕의 시대 이제 본격적으로 프랑스 절대왕정의 정점,바로 루이 14세(Louis XIV)의 시대야.그는 모든 것을 품은 왕이었고, 모든 것을 통제하고 싶어 했던 인물이기도 해.태양왕의 탄생루이 14세는 1643년에 아버지 루이 13세가 죽으면서겨우 5살의 나이로 프랑스 왕이 됐어.어리니까 당연히 직접 정치를 할 수는 없었고,이탈리아 출신 재상 마자랭(Mazarin)이 섭정 역할을 했지.이때 프랑스에서는 귀족들과 파리 시민들이 일으킨프롱드의 난(1648~1653)이라는 큰 반란이 있었어.루이 14세는 이때 겪은 불안정한 기억 때문에“내가 진짜 통치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고 해.그래서 그가 직접 통치를 시작한 이후엔,그 어떤 군주보다도 강력한 왕이 되고 싶어 했어.나는 곧 국가다 – 루이 14세의 절대주의루이 .. 2025. 6. 25.
[프랑스 이야기] 르네상스와 절대왕정 4. 루이 13세와 리슐리외 – 왕권 강화와 절대주의의 씨앗 루이 13세(Louis XIII)는 앙리 4세의 아들로,1601년에 태어나 1610년, 아버지가 암살당한 뒤 왕이 되었어.하지만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처음 몇 년간은 어머니 마리 드 메디시스가 섭정을 했지.그리고 바로 이때,한 정치 천재가 무대에 등장해.바로 리슐리외(Richelieu) 추기경이야.리슐리외 추기경 – 붉은 옷 입은 권력자리슐리외는 단순한 성직자가 아니었어.그는 실질적으로 프랑스를 이끈 총리이자 권력자였지.1624년에 국무장관(총리)이 된 뒤,그는 오직 한 가지 목표에 집중했어.바로 왕권 강화, 그리고 프랑스의 통일이었지. 그는 이렇게 말했대.“왕이 곧 국가다.”이 말은 나중에 루이 14세가 더 유명하게 만들지만,사실 그 씨앗은 리슐리외가 뿌린 거야.귀족과 위그노를 누르다리슐리외는 왕보다 강.. 2025. 6. 25.
[프랑스 이야기] 르네상스와 절대왕정 3. 앙리 4세와 낭트칙령 – 관용의 정치 프랑스 역사에서 앙리 4세(Henri IV)는참 독특한 왕이었어.원래 위그노였던 그가 가톨릭으로 개종하고프랑스를 통합했잖아?그 덕분에 수십 년 동안 계속된 종교 전쟁을마침내 끝낼 수 있었지.“파리는 하나의 미사만큼의 가치가 있다”이 말, 진짜 유명하지.앙리 4세가 가톨릭으로 개종하면서 한 말로 알려져 있는데,그만큼 그는 실용적 정치인이었어.“왕으로서 프랑스를 다스리려면한 종교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던 거지.결국 그는 1598년에 낭트칙령(Édit de Nantes)을 발표해.낭트칙령 – 피로 쌓인 평화의 약속이 칙령은 단순한 종교 자유 선언이 아니었어.프랑스 전역에서 위그노들이자유롭게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하고,자기들만의 학교, 재판소, 요새도 갖게 해줬지.물론, 수도인 파리 같은 주요 .. 2025. 6. 25.
[프랑스 이야기] 르네상스와 절대왕정 2. 위그노 전쟁 – 종교 갈등과 신교도의 탄압 16세기 중반, 프랑스는전쟁과 예술이 공존했던 르네상스를 지나훨씬 더 거칠고 무서운 시대로 접어들게 돼.바로 종교 전쟁의 시기야.이 시기를 대표하는 이름이 바로위그노 전쟁(1562~1598)이야.위그노란 누구야?‘위그노(Huguenots)’는프랑스에서 개신교(칼뱅주의)를 따르던 사람들을 부르던 말이야.프랑스는 전통적으로 로마 가톨릭 국가였기 때문에새로운 종교가 확산되자,기득권층과 교회는 크게 긴장했지. 하지만 위그노는 단지 신앙만의 문제가 아니었어.많은 위그노들이 상업과 금융에 종사하는도시 부르주아 계층이었거든.즉, 종교와 계급, 경제가 한꺼번에 얽힌복잡한 갈등이었던 거야.전쟁의 시작 – 첫 피의 교전1562년, 프랑스 남부의 바시(Bassy) 마을에서가톨릭 귀족이 위그노 예배 중이던 사람들을습격하면서 .. 2025. 6. 24.
[프랑스 이야기] 르네상스와 절대왕정 1. 발루아 왕조와 이탈리아 전쟁 – 예술과 전쟁의 교차점 중세 말기를 지나 르네상스 시대로 접어들면서프랑스도 새로운 흐름을 맞이하게 돼.그 중심에 있었던 건 바로 발루아 왕조였지.잉글랜드와의 백년전쟁에서 승리한 뒤,프랑스는 국내의 질서를 정비하고이제는 국외, 특히 이탈리아로 눈을 돌리게 돼.왜 하필 이탈리아였을까?당시 이탈리아는 통일된 나라가 아니라베네치아, 밀라노, 피렌체, 로마, 나폴리 같은작은 도시국가들이 경쟁하는 상황이었어.그런데 이 도시국가들은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였던 만큼엄청난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었지.프랑스는 이탈리아를“문화도 얻고, 땅도 넓히고, 권위도 높일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어.샤를 8세, 이탈리아에 발을 딛다1494년, 샤를 8세는자신이 나폴리 왕국의 정통 후계자라며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를 침공해.이걸 계기로 시작된 전쟁이 바로.. 2025. 6. 24.
[프랑스 이야기] 10. 잔 다르크 – 민족의 구원자에서 이단자까지 백년전쟁이 길어질수록 프랑스는 점점 더 밀려나고 있었어.도시들은 함락되고, 왕실은 자신감이 없었고,백성들도 “이젠 끝인가 보다…” 하고 체념하던 시기였지.그런데 바로 이때,세상에서 가장 뜻밖의 인물이 등장해.시골 소녀, 신의 목소리를 듣다잔 다르크(Jeanne d’Arc)는프랑스 시골의 평범한 농부 집안에서 태어났어.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녀는“신이 나를 통해 프랑스를 구하라 하신다”고 주장해.처음엔 당연히 사람들이 믿지 않았지.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왕세자에게 직접 찾아가“제가 나라를 구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어. 놀랍게도 왕세자는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잔에게 군대를 맡겼어.그녀는 무려 17살이었어. 믿기지 않지?오를레앙 전투, 기적 같은 승리잔이 이끈 첫 전투는잉글랜드군에 포위당한 오를레앙.. 2025. 6. 24.
[프랑스 이야기] 9. 백년전쟁의 시작 – 프랑스 vs 잉글랜드, 왕좌를 둘러싼 싸움 처음부터 말하자면, 이 전쟁은 진짜 ‘백 년’이나 한 게 맞아.1337년부터 1453년까지, 무려 116년 동안프랑스와 잉글랜드는 왕좌를 두고 싸움을 벌였어.왕좌를 둘러싼 핏줄의 얽힘이 모든 건 왕실의 혼인 관계 때문이었어.잉글랜드 왕실은 프랑스 왕실과 핏줄로 얽혀 있었거든.특히 에드워드 3세(Edward III)는 프랑스 왕실의 발루아 왕조와직접적으로 혈연 관계가 있었어.그래서 프랑스 왕실에 후계자가 없자,에드워드는 “내가 프랑스 왕이다!”라고 주장하게 된 거지.하지만 프랑스 귀족들은 이걸 받아들이지 않았어.“외국인이 어떻게 우리 왕이 되냐!” 하면서발루아 가문의 필리프 6세를 왕으로 세웠지.이로써 전쟁은 시작된 거야.경제와 영토, 그리고 자존심단순히 ‘왕좌’ 문제만이 아니었어.잉글랜드는 프랑스의 플랑.. 2025. 6. 24.
[프랑스 이야기] 8. 알비파 이단과 남프랑스 정복 – 종교와 권력의 충돌 13세기 초, 프랑스 남부에서는기존의 가톨릭 교회가 "정말 진리인가?" 라는 의문을 던진사람들이 등장했어.이들을 우리는 알비파(Albigensians),또는 카타리파(Cathars)라고 불러.이들은 당시 교회의 부패와 물질적 탐욕을 비판했지."진정한 기독교는 청빈하고 금욕적인 삶이어야 한다!"이런 가르침은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줬어.특히 남프랑스 지역, 알비(Albi)를 중심으로 퍼졌고,영주들 중에서도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어. 가톨릭 교회 입장에서는?그야말로 큰 위협이었지.‘이단(異端)’이라며 단죄했고,교황 인노첸시오 3세(Innocent III)는이들을 없애기 위해 아주 강력한 조치를 취하게 돼.그게 바로 알비 십자군(1209~1229)이야.이건 외부가 아니라 프랑스 내부에서 벌어진 십자군.. 2025. 6. 24.
[프랑스 이야기] 7. 십자군 전쟁과 프랑스 – 종교적 열정과 정치적 계산 11세기 말, 유럽 전역이 들썩였어.로마 교황이 ‘성지 예루살렘을 이슬람으로부터 탈환하자!’고 외치면서,십자군 전쟁(Crusades)이 시작됐거든.그리고 이 전쟁에서 프랑스는 가장 앞장섰던 나라 중 하나야.그 중심에는 바로 클레르몽 공의회(1095)에서교황 우르바노 2세(Urban II)가 했던 유명한 연설이 있었지.“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신다!(Deus vult)”이 한마디에 수많은 유럽 귀족들과 기사들이‘신의 이름으로 싸우겠다’며 무장을 시작했어.그중 프랑스 귀족들이 진짜 많았어.왜냐면 이 시기 프랑스는 기사 문화가 활발했고,전쟁 기술도 뛰어났거든.고드프루아 드 부용(Godefroy de Bouillon) 같은 인물은제1차 십자군에서 큰 활약을 하면서,결국 예루살렘 왕국의 첫 통치자가 돼. 하지만 여기.. 2025. 6. 24.
[프랑스 이야기] 6. 중세 봉건제와 영주들 – 왕보다 강한 귀족들 중세 프랑스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게 있어.그게 바로 ‘봉건제(feudalism)’라는 거야.말은 좀 어려워 보일 수 있지만,사실 아주 단순한 구조야.‘땅을 주고 충성을 받는다’ 이게 전부거든.당시 프랑스의 국왕은 이름만 왕이었지,실제로 다스릴 수 있는 지역은 매우 좁았어.나머지 넓은 땅은 전부 각지의 영주(lords)들이 쥐고 있었고,이 영주들은 병사도 가지고 있고,세금도 자기가 걷고,거의 작은 왕처럼 군림하고 있었어. 왕이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귀족들 중 하나’처럼 보일 정도였지. 예를 들면,노르망디 공작이나 아키텐 공작 같은 사람들은자기 땅에서 왕과 비슷한 권력을 행사했어.심지어 어떤 경우엔 이 사람들이국왕보다 더 부자이고 군사력도 더 셌지. 그래서 중세 프랑스는 사실상수많은 미니 왕.. 2025.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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