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프랑스 이야기] 7. 십자군 전쟁과 프랑스 – 종교적 열정과 정치적 계산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6. 24.
728x90
반응형
SMALL

 

11세기 말, 유럽 전역이 들썩였어.


로마 교황이 ‘성지 예루살렘을 이슬람으로부터 탈환하자!’고 외치면서,
십자군 전쟁(Crusades)이 시작됐거든.
그리고 이 전쟁에서 프랑스는 가장 앞장섰던 나라 중 하나야.

반응형

그 중심에는 바로 클레르몽 공의회(1095)에서
교황 우르바노 2세(Urban II)가 했던 유명한 연설이 있었지.
“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신다!(Deus vult)”


이 한마디에 수많은 유럽 귀족들과 기사들이
‘신의 이름으로 싸우겠다’며 무장을 시작했어.

그중 프랑스 귀족들이 진짜 많았어.


왜냐면 이 시기 프랑스는 기사 문화가 활발했고,
전쟁 기술도 뛰어났거든.

728x90


고드프루아 드 부용(Godefroy de Bouillon) 같은 인물은
제1차 십자군에서 큰 활약을 하면서,
결국 예루살렘 왕국의 첫 통치자가 돼.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십자군 전쟁이 단순히 ‘종교적 열정’만으로 벌어진 게 아니라는 거야.


많은 귀족들, 특히 프랑스 귀족들은
사실상 자기 땅에서 벗어나 부를 얻고 싶어서 전쟁에 나섰어.

 

지금처럼 부동산이 많지도 않고,
장남만 유산을 물려받던 시대였기 때문에,
다른 아들들은 자기 몫을 찾으려면
전쟁을 통해서 땅과 권력을 쟁취해야 했던 거지.

 

즉, 종교 + 경제적 동기 + 정치적 계산
이게 프랑스가 십자군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배경이야.

 

또 한 가지 중요한 건,
십자군 전쟁은 프랑스 왕의 권위에는 오히려 도움이 됐다는 점이야.


왜냐면 귀족들이 대거 전쟁터로 떠나면서
왕이 국내에서 입지를 조금씩 강화할 수 있었거든.

SMALL


카페 왕조 초기에 왕의 힘이 약했던 이유 중 하나가
귀족들이 너무 강해서였는데,
이 십자군 덕분에 그 균형이 살짝 흔들리게 된 거야.

 

물론 전쟁은 길고 지루했고,
예루살렘을 몇 번이나 잃고 되찾고 하면서
결국 200년 가까이 이어졌지.


그 안에서 프랑스 기사들, 귀족들, 성직자들은
영웅이 되기도 했고, 약탈자가 되기도 했어.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