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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이야기] 르네상스와 절대왕정 2. 위그노 전쟁 – 종교 갈등과 신교도의 탄압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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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중반, 프랑스는
전쟁과 예술이 공존했던 르네상스를 지나
훨씬 더 거칠고 무서운 시대로 접어들게 돼.


바로 종교 전쟁의 시기야.
이 시기를 대표하는 이름이 바로
위그노 전쟁(1562~1598)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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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그노란 누구야?

‘위그노(Huguenots)’는
프랑스에서 개신교(칼뱅주의)를 따르던 사람들을 부르던 말이야.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로마 가톨릭 국가였기 때문에
새로운 종교가 확산되자,
기득권층과 교회는 크게 긴장했지.

 

하지만 위그노는 단지 신앙만의 문제가 아니었어.
많은 위그노들이 상업과 금융에 종사하는
도시 부르주아 계층이었거든.
즉, 종교와 계급, 경제가 한꺼번에 얽힌
복잡한 갈등이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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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시작 – 첫 피의 교전

1562년, 프랑스 남부의 바시(Bassy) 마을에서
가톨릭 귀족이 위그노 예배 중이던 사람들을
습격하면서 피바람이 시작돼.


이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는 거의 40년 동안
가톨릭과 위그노 간의 전쟁에 휘말리게 돼.

왕실은 중간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썼지만,
때로는 한쪽에 치우치기도 했고,
권력을 둘러싼 귀족들의 싸움도
종교 갈등에 불을 지폈지.

가장 끔찍했던 날 – 성 바르톨로메오의 학살

1572년 8월 24일,
파리에서는 가장 악명 높은 학살 사건이 일어나.
바로 성 바르톨로메오의 날의 대학살이야.

그날은 위그노 지도자인 나바르의 앙리
가톨릭 귀족 마르그리트의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왕실이 이를 빌미로
위그노 지도자들을 한꺼번에 제거하려 했던 거야.

결과적으로 수천 명의 위그노들이
파리와 다른 도시에서 학살당했고,
프랑스 전역은 공포에 빠지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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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4세의 등장 – 전쟁을 멈춘 왕

이 혼란을 끝낸 인물이
바로 앙리 4세(나바르의 앙리)야.


그도 위그노였지만
프랑스 전체를 다스리기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이렇게 말하지.

"파리는 하나의 미사만큼의 가치가 있다."

그는 1598년 낭트칙령을 발표해서
위그노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어느 정도 허용했고,
드디어 프랑스에 평화가 찾아오게 돼.

갈등은 끝났을까?

낭트칙령으로 피의 전쟁은 멈췄지만
프랑스 사회 속 종교 갈등의 불씨
완전히 꺼지진 않았어.

이후 루이 14세 시대에 다시 낭트칙령이 폐지되면서
많은 위그노들이 나라를 떠나야 했고,
프랑스는 잠시 통합을 이룬 듯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인재의 유출과 경제적 타격을 겪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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