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말기를 지나 르네상스 시대로 접어들면서
프랑스도 새로운 흐름을 맞이하게 돼.
그 중심에 있었던 건 바로 발루아 왕조였지.
잉글랜드와의 백년전쟁에서 승리한 뒤,
프랑스는 국내의 질서를 정비하고
이제는 국외, 특히 이탈리아로 눈을 돌리게 돼.
왜 하필 이탈리아였을까?
당시 이탈리아는 통일된 나라가 아니라
베네치아, 밀라노, 피렌체, 로마, 나폴리 같은
작은 도시국가들이 경쟁하는 상황이었어.
그런데 이 도시국가들은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였던 만큼
엄청난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었지.
프랑스는 이탈리아를
“문화도 얻고, 땅도 넓히고, 권위도 높일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어.
샤를 8세, 이탈리아에 발을 딛다
1494년, 샤를 8세는
자신이 나폴리 왕국의 정통 후계자라며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를 침공해.
이걸 계기로 시작된 전쟁이 바로
이탈리아 전쟁(1494~1559)이야.
그리고 이 전쟁은 무려 60년 이상 이어지게 돼.
프랑스는 예술의 땅을 침공했지만
그 대가는 참혹했어.
스페인, 신성로마제국, 잉글랜드 등이
이탈리아 문제에 얽히면서
전 유럽이 하나의 커다란 싸움판이 되어버렸지.
전쟁이 남긴 것 – 예술, 그리고 야망
비록 프랑스는
이탈리아 땅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르네상스 문화는 이 전쟁을 통해
프랑스로 대거 유입돼.
프랑스 귀족들과 왕들은
이탈리아식 정원, 건축, 회화에 매료되었고,
파리와 루아르 강 유역에
르네상스풍의 궁전과 예술작품이 넘쳐나기 시작했지.
특히 나중에 소개할 프랑수아 1세는
예술을 사랑한 왕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초청해
그의 말년을 프랑스에서 보내게 해.
전쟁의 또 다른 그림자
하지만 이탈리아 전쟁은
프랑스 왕실 재정을 악화시키고
국내 정치 불안을 키우는 씨앗이 되기도 했어.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백성들의 피로는 커지고
기득권층의 부패도 심해졌거든.
프랑스는 문화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정치적으로는 더욱 복잡한 시기로 들어서게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