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본격적으로 프랑스 절대왕정의 정점,
바로 루이 14세(Louis XIV)의 시대야.
그는 모든 것을 품은 왕이었고, 모든 것을 통제하고 싶어 했던 인물이기도 해.
태양왕의 탄생
루이 14세는 1643년에 아버지 루이 13세가 죽으면서
겨우 5살의 나이로 프랑스 왕이 됐어.
어리니까 당연히 직접 정치를 할 수는 없었고,
이탈리아 출신 재상 마자랭(Mazarin)이 섭정 역할을 했지.
이때 프랑스에서는 귀족들과 파리 시민들이 일으킨
프롱드의 난(1648~1653)이라는 큰 반란이 있었어.
루이 14세는 이때 겪은 불안정한 기억 때문에
“내가 진짜 통치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고 해.
그래서 그가 직접 통치를 시작한 이후엔,
그 어떤 군주보다도 강력한 왕이 되고 싶어 했어.
나는 곧 국가다 – 루이 14세의 절대주의
루이 14세는 "국가는 나다(L'État, c'est moi)"
라는 말로 유명하지. 물론 실제로 한 말인지는 논란이 있지만,
그의 통치 방식은 이 말에 정말 딱 들어맞았어.
그는 모든 권력을 왕에게 집중시켰고,
귀족들을 조심스럽게 감시했으며,
군대와 외교, 세금, 법률까지 하나하나 손에서 놓지 않았지.
베르사유 궁전 – 절대권력의 무대
루이 14세의 권력을 상징하는 최고의 건축물이 있어.
바로 베르사유 궁전(Palace of Versailles)이야.
원래는 파리 외곽의 작은 사냥 별장이었는데,
그걸 궁전으로 탈바꿈시켜서
유럽에서 가장 호화로운 궁전으로 만들어버렸지.
루이는 이 궁전에
자신을 견제하던 귀족들을 초대해서 아예 궁궐에 머물게 했어.
그렇게 해서 왕의 눈 아래에 두고,
귀족들의 실질적인 정치 권한은 뺏어버린 거야.
이걸 보면 정말 치밀한 권력 전략가 같지?
종교 통일도 강하게
루이 14세는 가톨릭 신자였고,
프랑스 내 위그노(개신교도)를 완전히 통제하고 싶어 했어.
그래서 1685년,
앙리 4세가 발표한 종교적 관용 정책인 낭트칙령을 폐지해.
그 결과 위그노들은 대거 외국으로 망명했고,
프랑스는 내부의 다양성을 잃어버렸지만
왕은 만족했지.
“이제 내 왕국은 하나의 신앙만을 따른다”고 말이야.
전쟁광 왕의 끝없는 전쟁
루이 14세는 프랑스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
거의 평생을 전쟁에 보냈어.
특히 대표적인 전쟁이
- 네덜란드 전쟁 (1672~1678)
- 아우크스부르크 동맹 전쟁 (1688~1697)
-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1701~1714) 등등이야.
하지만 이 전쟁들은 막대한 비용을 초래했고,
나라의 재정은 점점 파탄에 이르게 돼.
절대왕정의 명암
루이 14세의 시대는
프랑스 문화, 예술, 건축, 궁정 생활 등이
유럽 전체의 표준이 될 만큼 화려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유와 다양성의 억압,
경제적 부담,
군사적 과잉,
귀족과 시민들의 불만도 함께 쌓이게 돼.
그는 1715년에 죽고,
무려 72년간 프랑스를 통치했어.
이건 역대 프랑스 왕 중 최장 통치 기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