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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이야기] 르네상스와 절대왕정 4. 루이 13세와 리슐리외 – 왕권 강화와 절대주의의 씨앗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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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3세(Louis XIII)는 앙리 4세의 아들로,
1601년에 태어나 1610년, 아버지가 암살당한 뒤 왕이 되었어.


하지만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처음 몇 년간은 어머니 마리 드 메디시스가 섭정을 했지.

그리고 바로 이때,
한 정치 천재가 무대에 등장해.
바로 리슐리외(Richelieu) 추기경이야.

리슐리외 추기경 – 붉은 옷 입은 권력자

리슐리외는 단순한 성직자가 아니었어.
그는 실질적으로 프랑스를 이끈 총리이자 권력자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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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4년에 국무장관(총리)이 된 뒤,
그는 오직 한 가지 목표에 집중했어.
바로 왕권 강화, 그리고 프랑스의 통일이었지.

 

그는 이렇게 말했대.
“왕이 곧 국가다.”
이 말은 나중에 루이 14세가 더 유명하게 만들지만,
사실 그 씨앗은 리슐리외가 뿌린 거야.

귀족과 위그노를 누르다

리슐리외는 왕보다 강했던 지방 귀족들의 힘을 꺾으려고 했어.
귀족들이 요새화한 성들을 허물고,
자신들만의 군대나 세금 체계를 갖지 못하도록 만들었지.

그리고 낭트칙령으로 보호받고 있던
위그노(개신교도)의 군사적 권한도 박탈했어.
1627년엔 위그노의 중심지였던 라로셸(La Rochelle)을 포위해서 굴복시키기도 했지.

그는 말했어.
“신앙은 가질 수 있지만,
국가 안에 또 다른 국가는 허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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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도, 전쟁도, 오직 국익 중심

리슐리외는 종교보다 국가 이익을 우선시했어.
그래서 가톨릭 신자인 주제에
가톨릭 신성로마제국과 싸우는 프로테스탄트들을 지원했지.

그 이유는 하나였어.


유럽에서 프랑스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

그래서 결국 30년 전쟁(1618~1648)이라는
거대한 유럽 전쟁에 프랑스도 개입하게 되고,
이 전쟁은 후에 프랑스를 유럽 최강국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돼.

루이 13세의 존재감은…?

이쯤 되면 궁금하지?
“그럼 루이 13세는 뭐했는데?” 하고 말이야.

사실 리슐리외가 워낙 강력했기 때문에,
루이 13세는 마치 ‘그림자 왕’처럼 느껴지기도 해.
하지만 그는 리슐리외의 정책을 지지했고,
그와 손발을 맞추며 왕권 강화의 기반을 다진 인물이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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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왕정, 준비 완료

루이 13세는 1643년에 사망하고,
그의 아들 루이 14세가 왕위에 오르게 돼.
하지만 당시 그는 겨우 5살이었기 때문에
잠깐 다른 인물이 섭정을 하지.

그리고 나서,
진짜 ‘태양왕’의 시대가 열리게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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