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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이야기] 5. 위그 카페와 카페 왕조의 시작 – 중세 프랑스 왕정의 태동 서프랑크 왕국이 생기고 나서도 한동안 프랑스는 혼란스러웠어.왜냐면 왕은 있었지만,진짜 권력은 지방을 장악한 강력한 귀족들에게 있었거든.왕은 그저 ‘왕’이라는 이름만 가진 존재에 불과했지. 그러던 중, 987년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당시 서프랑크 왕국의 마지막 왕조였던 카롤링거 왕조의 왕이 죽자,귀족들은 고민 끝에 한 사람을 새 왕으로 뽑아. 그 인물이 바로 위그 카페(Hugh Capet)야. 위그는 파리와 그 일대를 다스리던 강력한 귀족 출신이었어.그는 명문 귀족이었고, 교회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당시로선 안정적인 선택이었지.그렇게 해서 카페 왕조(Capetian dynasty)가 시작돼.이 왕조는 무려 800년 가까이 프랑스를 지배하면서프랑스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왕조가 돼. 그런.. 2025. 6. 24.
[프랑스 이야기] 4. 서프랑크 왕국의 탄생 – 베르됭 조약과 프랑스의 뿌리 샤를마뉴가 죽은 뒤, 그의 거대한 제국은 오래 유지되지 못했어.그 아들 루트비히 경건왕이 뒤를 이었지만,그 다음 세대에서 문제가 생겼지.루트비히의 아들 셋이아버지의 제국을 두고 갈등을 벌이기 시작했거든.이 셋은 각각 다른 지역을 원했고, 결국 피 터지는 내전 끝에843년에 ‘베르됭 조약(Treaty of Verdun)’을 맺게 돼.이 조약이 바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시초가 되는 엄청 중요한 사건이야.조약 내용은 이랬어.장 로탈링: 제국의 중앙부를 받았는데, 여긴 지금의 이탈리아 북부와 스위스, 벨기에 등지였어.루트비히 독일인: 제국의 동부, 즉 지금의 독일 지역을 차지했지.카를 대머리왕(샤를2세): 제국의 서부, 즉 현재 프랑스 지역을 받게 돼.이렇게 나뉘면서 우리가 아는 ‘서프랑크 왕국’, 즉 .. 2025. 6. 23.
[프랑스 이야기] 3. 카롤링거 제국 – 샤를마뉴의 대관식과 유럽 통합 로마 제국이 무너진 뒤 유럽은 각자 알아서 살아가는 시기가 한참 이어졌어.그러다 프랑크 왕국이 점점 커지더니,8세기에는 아주 중요한 인물이 등장하게 돼.바로 샤를마뉴(Charlemagne), 즉 카롤루스 대제야.샤를마뉴는 그냥 왕이 아니야.그는 유럽을 다시 ‘하나의 제국’으로 묶어보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이었지.그 시작은 그의 아버지, 피핀 3세(Pepin the Short)에서부터야.피핀은 기존의 왕이던 메로빙거 왕조를 몰아내고자기 가문인 카롤링거(Carolingian) 왕조를 시작했어. 샤를마뉴는 이 피핀의 아들이었고,아버지보다 훨씬 더 대담하고 뛰어난 정치가였어. 그는 재위 기간 동안 유럽 곳곳을 정복해나갔는데,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북부까지 다 포괄하게 돼.사실상 서유럽 대부분을 다스.. 2025. 6. 23.
[프랑스 이야기] 2. 프랑크 왕국의 시작 – 클로비스 1세와 기독교 개종 로마 제국이 무너지면서 유럽 땅은 한동안 혼돈의 시대에 들어가.특히 지금의 프랑스 땅은 여러 게르만족이 여기저기 들어와서각자 나름대로 나라를 세우기 시작했지.그중에서 ‘프랑크족(Franks)’이라는 부족이 있었어.이들이 후에 ‘프랑스’라는 이름의 뿌리가 되는 사람들이야.이 프랑크족을 하나로 모은 인물이 있었는데,그가 바로 클로비스 1세(Clovis I)야.우리가 흔히 말하는 ‘프랑크 왕국’의 첫 왕이지.그런데 이 사람이 왜 중요하냐고?단순히 왕국을 세운 게 아니라당시로서는 정말 파격적인 선택을 했거든. 바로 기독교(가톨릭)로 개종한 거야.그 당시 게르만족 왕들은 대부분 아리우스파(이단으로 간주된 기독교 분파)를 믿고 있었어.로마 가톨릭 교회와는 좀 달랐지.그런데 클로비스는 왕비인 클로틸드(Clotilde.. 2025. 6. 23.
[프랑스 이야기] 1. 갈리아와 로마 제국 – 줄리어스 시저와의 운명적인 만남 한참 옛날, 프랑스 땅은 지금 우리가 아는 ‘프랑스’가 아니었어.그 시절, 이곳엔 ‘갈리아(Gallia)’라고 불리는 지역이 있었고,여기엔 다양한 켈트족 부족들이 흩어져 살고 있었지.이들은 각자 부족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모여 살았고,언어도, 문화도, 심지어 법도 제각각이었어. 그런데 문제는 뭐였냐면,이 켈트족들은 서로 자주 싸웠고, 연합이 잘 안 됐다는 거야.그래서 외부에서 누가 쳐들어와도함께 힘을 모으기가 쉽지 않았지.이 틈을 노리고 등판한 인물이 있었어.바로 로마의 장군이자 정치가, 줄리어스 시저(Julius Caesar). 시저는 로마 정치판에서도 야심가로 유명했는데,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면 전쟁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야 했거든.그래서 그는 북쪽에 있는 ‘갈리아 정복’이라는 대형 프로젝트에 착수해.. 2025. 6. 23.
[일본의 식민지] 35. 식민지의 유산 – 상처, 기억, 그리고 역사 인식의 차이 일본 제국이 공식적으로 해체된 건 1945년이지만,그로 인한 식민지 지배의 상처는 지금도 살아 있어. 특히 조선, 대만, 중국, 동남아시아 각국은제국주의의 피해를 직접 겪었고,그 기억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지.한국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6년간의식민지 시절 동안 문화·언어·이름까지 빼앗겼고,수많은 젊은이들이 강제 노동과 전쟁터로 끌려갔으며,여성들은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고통을 겪었어.그리고 이건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까지정치·외교·감정 속에 살아 숨쉬고 있어.일본의 몇몇 정치인들은 과거사를 부정하거나 축소하려는 발언을 하고,일부 교과서에서는 침략을 진출이라고 표현하거나,위안부 문제를 축소하거나 누락시키는 경우도 있어. 그에 반해 피해국들, 특히 한국과 .. 2025. 6. 20.
[일본의 식민지] 34. 일본 제국의 해체 – GHQ 점령과 전범재판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순간부터일본은 더 이상 ‘제국’이 아니게 됐어.전쟁은 끝났지만, 진짜 이야기는 그 다음부터 시작됐지. 일본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의 점령 하에 들어가게 되었고,이 점령은 단순한 군사 주둔이 아니었어.일본을 근본적으로 다시 만드는 과정이었지. 이 과정을 주도한 게 바로 GHQ(연합국 최고사령부)였어.이 GHQ는 미국의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조직으로,일본을 ‘민주적인 나라’로 탈바꿈시키는 걸 목표로 했어. 먼저,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었던 군대는 해체됐고,전쟁을 이끌었던 정치인과 군인들에 대한 책임을 묻는 재판,즉 도쿄 전범재판이 열렸어. 이 재판에서는 A급 전범으로 분류된 정치·군사 지도자들이 재판을 받았고,일부는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어... 2025. 6. 20.
[일본의 식민지] 33. 태평양 전쟁의 종결 – 히로시마·나가사키와 무조건 항복 1940년대 초반, 일본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영토를 넓혔어.동남아시아, 태평양 섬들, 심지어는 인도에까지 손을 뻗쳤지.그 중심엔 미국과의 전쟁, 즉 태평양 전쟁이 있었어. 1941년, 진주만 기습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렸지. 초반엔 일본이 이기는 듯 보였지만,미국은 빠르게 전열을 정비했어.섬 하나하나를 되찾는 ‘도서 점령 전략(Island Hopping)’으로일본 본토를 점점 포위해 갔지. 1945년, 전세는 완전히 기울어 있었고 일본은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졌어. 그런데 여기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져.1945년 8월 6일, 미국은 일본의 히로시마에세계 최초의 원자폭탄을 투하해. 순식간에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도시는 잿더미가 됐지.그리고 사흘 뒤, 8월 .. 2025. 6. 20.
[일본의 식민지] 32. 조선의 지식인과 문인들 – 민족 정체성의 수호자들 일제가 조선을 지배하던 시기,무력이나 정치적인 저항 말고도 또 다른 방식으로민족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이 있었어. 바로 지식인들과 문인들이었지. 이들은 글과 교육, 예술을 통해 민족의정신을 지켜냈고,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저항했어. 대표적인 인물로는 이광수, 최남선, 주시경, 한용운,이상화, 윤동주 같은 사람들이 있어. 이광수나 최남선은 초기엔 계몽운동가로서 국민들에게‘근대적 사고방식’을 심어주려 했고, 한용운은 ‘님의 침묵’을 통해조선의 억눌린 정서를 문학적으로 승화시켰지. 윤동주는 말할 것도 없고. 그가 쓴 시 ‘서시’, ‘참회록’ 같은작품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어.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이 구절 기억나지?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양심과 정체성을지켜내려 .. 2025. 6. 20.
[일본의 식민지] 31. 조선인 독립운동가들 – 안중근, 유관순, 김구, 윤봉길 일본의 식민 지배가 날이 갈수록 강해졌던 시절,모든 걸 빼앗기고 억눌려 있던 조선 땅에도조용히 타오르는 저항의 불꽃이 있었어. 총칼 없이도,혹은 목숨을 걸고서라도조선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 했던 사람들이 있었지.그중에서도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인물들,안중근, 유관순, 김구, 윤봉길 이야기를 해줄게. 안중근 – 단지 그를 쏜 게 아니야, 역사를 울린 총성이었지1909년 10월 26일,하얼빈역에서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람.그게 바로 안중근이야. 그는 총을 쏘기 전에왼손 약지를 잘라 ‘대한독립’이라는 글자를 피로 써서 맹세했어.그리고 이토 히로부미를 단죄한 뒤,“내가 죽어야 조선이 산다”며 차분히 재판을 받고 순국했지.그는 단순히 테러를 한 게 아니었어.“동양의 평화를 위협한 침략자를 처단한 것”이.. 2025.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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