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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이야기] 4. 서프랑크 왕국의 탄생 – 베르됭 조약과 프랑스의 뿌리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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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마뉴가 죽은 뒤, 그의 거대한 제국은 오래 유지되지 못했어.


그 아들 루트비히 경건왕이 뒤를 이었지만,
그 다음 세대에서 문제가 생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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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의 아들 셋이
아버지의 제국을 두고 갈등을 벌이기 시작했거든.
이 셋은 각각 다른 지역을 원했고, 결국 피 터지는 내전 끝에
843년에 ‘베르됭 조약(Treaty of Verdun)’을 맺게 돼.

이 조약이 바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시초가 되는 엄청 중요한 사건이야.

조약 내용은 이랬어.

  • 장 로탈링: 제국의 중앙부를 받았는데, 여긴 지금의 이탈리아 북부와 스위스, 벨기에 등지였어.
  • 루트비히 독일인: 제국의 동부, 즉 지금의 독일 지역을 차지했지.
  • 카를 대머리왕(샤를2세): 제국의 서부, 즉 현재 프랑스 지역을 받게 돼.

이렇게 나뉘면서 우리가 아는 ‘서프랑크 왕국’, 즉 프랑스의 시초가 등장하게 된 거야.

사실 프랑크 왕국은 게르만족의 국가였고, 언어도 문화도 혼재되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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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베르됭 조약 이후,
서쪽은 라틴어 계통의 언어를 쓰는 프랑크인들과 갈리아계 사람들이 중심이 되면서
점점 ‘프랑스’라는 정체성이 형성되기 시작한 거야.

이 시기를 지나면서
이 서프랑크 왕국은 자주 외침과 귀족들의 분열에 시달렸지만,
그래도 프랑스라는 나라의 뿌리는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자라나기 시작한 거지.

 

특히 이 조약은 이후 유럽 전쟁의 씨앗이기도 했어.
왜냐하면 분할된 땅이 애매하게 얽혀 있어서
프랑스와 독일은 이후 수백 년 동안 서로 땅을 두고 다투게 되거든.

 

그러니까 프랑스와 독일의 끝없는 전쟁의 원인은
이미 이 시점에서 시작된 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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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서프랑크 왕국은 내부 권력 다툼과 외부 침입(특히 바이킹의 침입)으로
왕권이 약해졌고, 그 틈에 강한 귀족들이 지역에서 힘을 키우게 돼.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결국 카페 왕조로 왕권이 넘어가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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