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랑크 왕국이 생기고 나서도 한동안 프랑스는 혼란스러웠어.
왜냐면 왕은 있었지만,
진짜 권력은 지방을 장악한 강력한 귀족들에게 있었거든.
왕은 그저 ‘왕’이라는 이름만 가진 존재에 불과했지.
그러던 중, 987년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
당시 서프랑크 왕국의 마지막 왕조였던 카롤링거 왕조의 왕이 죽자,
귀족들은 고민 끝에 한 사람을 새 왕으로 뽑아.
그 인물이 바로 위그 카페(Hugh Capet)야.
위그는 파리와 그 일대를 다스리던 강력한 귀족 출신이었어.
그는 명문 귀족이었고, 교회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로선 안정적인 선택이었지.
그렇게 해서 카페 왕조(Capetian dynasty)가 시작돼.
이 왕조는 무려 800년 가까이 프랑스를 지배하면서
프랑스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왕조가 돼.
그런데 이 카페 왕조 초창기는 굉장히 힘이 약했어.
위그 카페가 왕으로 즉위했지만,
실제로 그가 다스리는 땅은 파리와 주변 몇 지역뿐이었어.
프랑스 전역에는 지역을 꽉 쥔 영주들과 귀족들이 있었고,
이들은 ‘왕? 그게 뭐야? 우리 땅은 우리 맘대로 할 거야’ 라는 태도였지.
그래서 카페 왕조의 초반 몇 세대는
왕권을 키우는 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어.
그리고 이 과정을 거치면서
중세 프랑스의 봉건 왕정 체제가 점점 모습을 갖춰나가게 된 거야.
위그 카페가 했던 일 중 하나는
‘왕위 세습의 안정화’야.
당시 유럽은 선출 왕정이 많았는데,
위그는 자기 아들을 미리 공동왕으로 선포해서
왕위가 안정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했지.
이런 장치 덕분에
카페 왕조는 끊기지 않고 아버지에서 아들로,
또 그 아들로 계속 이어질 수 있었어.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점점 강력한 왕들이 등장하면서
이 왕조는 프랑스라는 나라의 뼈대를 굳히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