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옛날, 프랑스 땅은 지금 우리가 아는 ‘프랑스’가 아니었어.
그 시절, 이곳엔 ‘갈리아(Gallia)’라고 불리는 지역이 있었고,
여기엔 다양한 켈트족 부족들이 흩어져 살고 있었지.
이들은 각자 부족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모여 살았고,
언어도, 문화도, 심지어 법도 제각각이었어.
그런데 문제는 뭐였냐면,
이 켈트족들은 서로 자주 싸웠고, 연합이 잘 안 됐다는 거야.
그래서 외부에서 누가 쳐들어와도
함께 힘을 모으기가 쉽지 않았지.
이 틈을 노리고 등판한 인물이 있었어.
바로 로마의 장군이자 정치가, 줄리어스 시저(Julius Caesar).
시저는 로마 정치판에서도 야심가로 유명했는데,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면 전쟁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야 했거든.
그래서 그는 북쪽에 있는 ‘갈리아 정복’이라는 대형 프로젝트에 착수해.
기원전 58년부터 시작된 이 전쟁을
우린 ‘갈리아 전쟁’이라고 불러.
처음엔 갈리아 부족들이 시저에 대항해 싸웠지만
서로 단결하지 못하는 바람에 로마군에게 하나둘씩 무너지게 돼.
게다가 시저는 단순한 무력뿐 아니라
‘분할통치 전략’을 아주 교묘하게 썼어.
어떤 부족엔 "너희랑 우리 로마는 친구지~" 하면서 편을 가르고,
다른 부족은 "쟤네가 너네 배신했어" 식으로 갈등을 키웠지.
그야말로 정치 100단이 따로 없었어.
하지만 갈리아에도 전설적인 인물이 있었어.
그 이름은 베르킨게토릭스(Vercingetorix).
아라베르니 부족의 수장이었고, 드물게 갈리아 부족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던 인물이야.
그는 "우리도 그냥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고 외치며
전국적으로 로마에 맞서 싸웠지.
특히 알레시아 전투는 정말 유명해.
양쪽 모두 치열하게 싸웠고, 베르킨게토릭스는 마지막까지 항복하지 않았지만…
결국 로마에 포위돼 패배하게 돼.
시저는 그를 로마로 끌고 가서
승리의 상징처럼 행진식에 앞세웠고,
그 후엔 그를 처형해 버려.
정말 잔인한 시대였지…
이 정복으로 갈리아는 완전히 로마의 속주가 됐고,
프랑스의 역사에 본격적으로 ‘로마 문화’가 스며들게 돼.
언어, 도로, 법, 도시 시스템 같은 게 이때부터 자리잡기 시작한 거야.
놀라운 건, 프랑스어에 있는 라틴어의 흔적들.
그게 바로 이 시기의 유산이라는 점이지.
그러니까 이때의 갈리아 정복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프랑스라는 나라가 문화적 기반을 어떻게 형성했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