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 조선의 고종은 한 가지 큰 결심을 하게 돼.
바로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자신을 황제라 칭하는 거였어.

이건 단순한 명칭 변경이 아니라, 조선이 더는 중국의 속국이 아니며,
자주독립국이다라는 선언이었지.
한마디로 대내외적으로 조선의 자주권을 강조하려는 몸부림이었어.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
배경에는 청일전쟁(1894~1895)의 여파가 있었어.
이 전쟁에서 일본이 이기면서,
조선은 청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났어.
외형적으로는 독립했지만, 실제로는
청나라 대신 일본의 간섭이 시작된 거야.
고종은 이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일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립 제국’을 선포했어.
그리고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에서 즉위식을 올리며 스스로 대한제국의 황제로 등극했지.
이때부터는 ‘조선 왕’이 아니라 ‘대한제국 황제’가 된 거야.
형식은 근대화 국가의 외양을 갖추려는 시도였어.
궁궐도 개수하고, 군제 개편, 법제 정비 등 근대 개혁을 추진했지.
심지어 황제 즉위식에는 서양식 군복을 입고 나와서 눈길을 끌었어.
서구 열강처럼 보이려 했던 거야.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어.
대한제국은 국제 외교무대에서 너무나 외로웠고, 믿을 만한 우방국도 없었지.
러시아를 통해 일본 견제를 시도하려 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어.
열강은 조선을 진정한 독립국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일본은 조선을 기회만 되면 삼키려 했어.
고종은 후에 헤이그 특사를 파견해서 조선의 독립을 알리려 했지만, 그마저도 외면당해.
한마디로, 대한제국의 외교는 철저히 고립된 상태였고, 내부적으로도 부패와 혼란이 계속됐어.
결국 이 시도는 조선의 최후 발악에 가까웠어.
고종은 자주독립을 외쳤지만, 실제로는 일본의 압력 속에 점점 더 코너로 몰렸고,
1905년 을사늑약 이후엔 외교권마저 빼앗기게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