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28x90
반응형
SMALL

전체 글850

[스페인 이야기] 3. 서고트 왕국의 형성 – 로마 몰락 후의 기독교 왕국 로마 제국이 무너진 이후의 혼란5세기 초, 로마 제국은 더 이상 옛날의 로마가 아니었어. 내부는 부패했고, 외부에선 게르만족이 계속 밀려들어오고 있었지. 그중에서도 서고트족은 아주 강력한 세력이었어. 이들은 원래 동유럽에서 살던 게르만족의 한 갈래였는데, 훈족의 압박을 피해 서쪽으로 이동했지. 처음엔 로마와 싸우다가 나중엔 로마와 협력하는 길을 택했어. 그리고 결국 로마의 허락을 받아 지금의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 지역, 즉 히스파니아에 정착하게 됐지.서고트족, 히스파니아의 새로운 주인이 되다서고트족은 처음에는 툴루즈를 중심으로 한 갈리아 남부에 자리를 잡았어. 그래서 이 시기를 ‘툴루즈 왕국’이라고 부르기도 해. 하지만 507년, 프랑크족의 클로비스 1세와 전쟁에서 패한 후, 서고트족은 갈리아에서 밀려나.. 2025. 6. 29.
[스페인 이야기] 2. 로마 제국의 히스파니아 정복 – 도로, 도시, 언어의 시작 로마의 눈에 들어온 히스파니아기원전 3세기 무렵, 로마는 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카르타고와 치열하게 맞붙고 있었어. 바로 '포에니 전쟁'이라고 불리는 시기였지. 이 전쟁을 통해 로마는 자연스럽게 히스파니아 땅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 카르타고가 이베리아 반도에서 자원을 얻어 힘을 키우는 걸 본 로마는, 그곳을 장악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거야. 그래서 로마는 군대를 파견해 점점 북쪽으로 영역을 넓혀 나가기 시작했지. 정복과 저항 – 히스파니아의 고된 길히스파니아 사람들은 로마의 침략에 쉽게 무너지지 않았어. 특히 북부 지역의 부족들은 수십 년 동안 끈질기게 저항했지. 그 중에서도 누만시아라는 도시는 아주 오랫동안 로마 군을 괴롭혔어. 로마 장군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가 직접 나서서 포위 작전을 펼쳤고.. 2025. 6. 29.
[스페인 이야기] 1. 이베리아인의 기원과 켈트 이주 – 선사 시대의 스페인 바위 속에 남은 흔적들스페인의 아주 먼 과거를 들여다보면, 아직 '스페인'이라는 이름조차 없던 시절이 있었어. 그땐 사람들이 글자 대신 동굴 벽에 그림을 그려 남겼지. 특히 유명한 곳이 바로 알타미라 동굴이야. 이곳엔 기원전 1만 년 전쯤 그려졌다고 하는 들소, 사슴 같은 동물 그림이 가득 남아 있어. 마치 당시 사람들이 사냥을 기원하거나, 삶의 기억을 새겨놓은 듯한 느낌이지.이렇게 선사 시대의 흔적이 풍부하다는 건, 이베리아 반도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단 뜻이야. 물론 이때는 부족 단위의 사회였고, 아직 농경과 목축도 막 시작되는 단계였어. 점점 농사와 가축을 기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생기고, 구리와 청동을 다루는 기술도 발전했지. 이베리아인의 등장과 특징기원전 1000년 무렵, 이베리.. 2025. 6. 28.
[이스라엘 이야기] 번외편 (2) 3. 미래 세대가 마주할 질문들이스라엘 사회는 지금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젊은 세대는 전쟁보다는 일상과 기술, 경제에 더 관심이 많고,유대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 민족이 공존하는 현실 속에서새로운 사고방식을 만들어 가고 있어.물론, 그 속에서도 극단주의적 시각은 사라지지 않아.일부는 여전히 “강한 이스라엘”을 외치며정체성을 ‘단일한 유대 공동체’로만 묶으려 하고,또 다른 일부는 다문화, 다민족, 다종교 국가로 나아가길 원하지. 그래서 이스라엘은 두 가지 정체성 사이에서 늘 줄타기를 해야 해.세계 유대인의 고향이라는 사명과,다양한 구성원이 함께 살아가는 민주국가라는 이상.이 둘은 때로는 겹치지만,때로는 서로 충돌하는 가치가 되기도 해.4. 우리가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법한국에 있는 우리에게 이스라엘은 .. 2025. 6. 28.
[이스라엘 이야기] 번외편 (1) 1. 팔레스타인 문제, 이스라엘 정체성의 거울팔레스타인과의 갈등은 단지 ‘국가 간의 분쟁’이 아니야.이스라엘 내부의 정체성 문제를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거울 같은 존재지.어떤 이들은 말해.“팔레스타인은 우리의 적이다. 그들은 우리를 인정하지 않는다.”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들은 말하지.“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이스라엘 내에서도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너무나 다양해.극우 정치인들은 **‘영토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진보주의자나 일부 종교적 중도파는**‘평화를 위한 타협이야말로 이스라엘의 생존 전략’**이라고 주장하지.문제는 이 논쟁이 정체성의 문제와 완전히 겹쳐 있다는 거야.이스라엘이 ‘유대인의 국가’로 남는다면,팔레스타인.. 2025. 6. 28.
[이스라엘 이야기] 35. 현대 이스라엘의 정체성 – 정착촌, 유대교 국가, 내부 갈등 1. “유대 국가”라는 개념, 어디까지 허용될까?현대 이스라엘은 ‘유대인의 국가’라는 정체성을 분명하게 내세워.2018년, 이스라엘 국회는 논란이 컸던국가 정체성 기본법을 통과시켰는데,이 법은 이스라엘을 “유대 민족의 역사적 고향”,그리고 **“오직 유대인만이 자결권을 가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어. 이 법의 핵심은 간단해.“이스라엘은 유대인의 나라”, 그리고 “아랍어는 더 이상 공용어가 아니다.”이 법은 다수의 유대인에게는 자부심을 주었지만,이스라엘 내 아랍계 시민들(전체 인구의 약 20%)에게는 차별의 상징으로 다가왔지.그 결과, 이스라엘 사회 내부에서도 의견이 팽팽하게 갈렸어.유대교 정통파와 보수 진영은 “당연한 법”이라 주장했고,진보 진영과 아랍계 시민은 “이스라엘 민주주의의 후퇴”라고 강하게.. 2025. 6. 28.
[이스라엘 이야기] 34. 가자 전쟁과 하마스 – 이스라엘의 안보 딜레마 1. 가자지구, 그 좁은 땅의 복잡한 운명가자지구는 중동에서도 손꼽히게 좁고 밀집된 지역이야.길이 약 40km, 폭 10km 남짓의 작은 지역인데,거기에 200만 명 가까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밀집해 살아가고 있어. 원래 가자는 이스라엘이 1967년 6일 전쟁 이후 점령했었지만,2005년에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철수하면서 팔레스타인 측에 넘겨주게 돼.당시 이스라엘은 이곳에서의 정착촌을 모두 철거하고,군도 철수하면서 “가자에서 손을 떼겠다”고 선언했지.그런데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돼.가자지구의 정치적 권력을 누가 장악하느냐를 두고팔레스타인 내부에서도 갈등이 벌어졌거든.그 결과, 2006년 **하마스(Hamas)**가 선거에서 승리하고,2007년에는 무력 충돌 끝에 가자 전체를 하마스가 장악하게 돼. 2. 하.. 2025. 6. 28.
[이스라엘 이야기] 33. 오슬로 협정 – 평화의 희망과 실패 1. 끝나지 않는 분쟁 속 작은 희망, 오슬로에서 피어난 대화1990년대 초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긴장은 여전히 팽팽했어.1987년에 시작된 1차 인티파다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에 큰 충격을 줬지.무력보다는 시민 중심의 저항이었고,TV를 통해 전 세계가 어린 소년들이 군인에게 돌을 던지는 모습을 보며팔레스타인 문제에 눈을 돌리게 되었어. 그 와중에 냉전이 종식되고,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되면서중동 평화를 중재하려는 시도도 본격적으로 시작됐어.1991년 마드리드 회담이 열렸고, 이어서 보다 실질적인 결과를 낳은오슬로 비밀 협상이 1993년 노르웨이에서 진행되었지.여기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는 상호 존재를 인정하고앞으로의 평화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자는 데에 합의하게.. 2025. 6. 28.
[이스라엘 이야기] 32.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 무력 충돌과 테러 1. 디아스포라의 그늘 아래,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노가 솟구치다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한 1948년 이후, 수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고향에서 쫓겨나 주변 아랍 국가로 흩어졌어.이들은 자신들을 “난민”으로 불렀고, 갈 곳 없는 삶을 이어가야 했지.레바논, 요르단, 시리아, 이집트 등지에 정착한 수백만 명의팔레스타인인은 국가도, 시민권도, 미래도 없이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어. 이런 절망 속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 PLO)**였어.1964년, 아랍연맹 주도로 만들어졌는데,처음엔 아랍 국가들의 정치 도구였지.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PLO는 점점 팔레스타인인들 스스로의 독립을 위한 조직으로 변모해갔어.특히 1969년, **야세르 아라파트.. 2025. 6. 28.
[이스라엘 이야기] 31. 욤키푸르 전쟁(1973) – 아랍 국가들의 반격 1.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 이집트와 시리아의 복수의 칼날1967년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엄청난 영토를 차지했지만 평화는 오지 않았어.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의 승리를 결코 인정하지 않았고,특히 이집트는 시나이 반도를, 시리아는 골란 고원을 되찾기 위해 철저히 준비했지.그리고 마침내 1973년, 그 반격의 날이 찾아왔어.때는 10월 6일, 유대교에서 가장 신성한 날로 여겨지는‘욤키푸르(Yom Kippur)’, 곧 속죄일이었어.이스라엘 군대 대부분이 휴가를 떠난 상태였고,전선은 비교적 느슨하게 유지되고 있었지.바로 그날, 이집트와 시리아가 동시에 공격을 개시했어.이스라엘의 방어선을 뚫기 위한 치밀한 계획이었던 거지.이집트군은 수에즈 운하를 건너 시나이 반도로 진격,시리아군은 골란 고원을 향해 대대적.. 2025. 6. 28.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