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디아스포라의 그늘 아래,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노가 솟구치다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한 1948년 이후, 수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고향에서 쫓겨나 주변 아랍 국가로 흩어졌어.
이들은 자신들을 “난민”으로 불렀고, 갈 곳 없는 삶을 이어가야 했지.

레바논, 요르단, 시리아, 이집트 등지에 정착한 수백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은 국가도, 시민권도, 미래도 없이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어.
이런 절망 속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 PLO)**였어.
1964년, 아랍연맹 주도로 만들어졌는데,
처음엔 아랍 국가들의 정치 도구였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PLO는 점점 팔레스타인인들 스스로의
독립을 위한 조직으로 변모해갔어.

특히 1969년,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가 의장으로 선출되면서
PLO는 더욱 급진적이고, 독자적인 노선을 걷기 시작했지.
2. '무장 투쟁'이라는 이름의 선택 – 게릴라와 테러의 경계
PLO가 처음부터 폭력적이었던 건 아니야.
하지만 이들은 국가도, 군대도, 외교 채널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 세계에 알릴 방법을 찾고 있었어.
그리고 선택한 방식이 바로 ‘무장 투쟁’이었지.
특히 PLO 산하의 여러 조직들, 예컨대 파타(Fatah),
DFLP(팔레스타인민주전선), PFLP(팔레스타인인민전선) 등은
이스라엘 내 민간인 대상 공격이나 해외에서의 납치, 폭파 같은
극단적인 전술을 사용하게 되었어.

1968년 이후로는 이스라엘 군사기지 습격, 항공기 납치,
민간인 공격이 빈번하게 일어났고,
전 세계는 “팔레스타인”이라는 단어를 테러와 연결해서 기억하게 되었어.
특히 1972년 뮌헨 올림픽 참사는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지.
PLO 산하 조직인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들을
인질로 삼아 살해했던 사건이었어.
이 사건은 국제사회에 “팔레스타인 문제”를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PLO의 이미지를 폭력 단체로 굳혀버리는 부작용도 가져왔지.
3. 요르단에서의 추방, 그리고 레바논의 붕괴
PLO는 처음에 요르단에 본부를 두고 활동했어.
그러나 점점 세력이 커지면서 요르단 내에서 국가처럼 행동하게 되었고,
1970년, 요르단 국왕 후세인은 이를 견디지 못하고 PLO를 공격했지.
이 사건을 ‘검은 9월 사건’이라고 불러.
이 과정에서 수천 명이 죽었고, PLO는 요르단에서 추방당해 레바논으로 옮겨가게 돼.
하지만 레바논도 곧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이 남부 레바논에서 활동하며 이스라엘을 공격하자,
이스라엘은 1982년 레바논 침공을 단행하게 돼.

이 과정에서 사브라·샤틸라 학살 같은 참극이 벌어졌고,
PLO는 또다시 튀니지로 망명해야 했지.
계속해서 뿌리 내리지 못하고 쫓겨다니는 팔레스타인 운동,
그 안에서 무력투쟁은 더욱 격화되고,
평화와 타협의 목소리는 점점 줄어들게 되었어.
4. 정치와 외교로의 전환 – UN 연설과 ‘테러리스트에서 외교관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PLO 내부에서도 변화가 일어나.
무조건적인 무력 투쟁은 한계에 부딪혔고, 국제 여론도 싸늘해졌거든.
특히 1980년대부터 야세르 아라파트는 무력 대신 외교 무대로 이동하기 시작해.
가장 상징적인 순간은 1974년 UN 총회 연설이었어.
아라파트는 “한 손엔 올리브 가지를, 다른 한 손엔 자유의 투쟁을 위한 총을 들고 왔다”고 말했지.
그의 이 말은 평화와 투쟁, 그 사이의 모순된 현실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어.
그 연설 이후, 유엔은 PLO를 팔레스타인 민족의 대표 기구로 인정했고,
전 세계 수많은 국가가 PLO를 외교적으로 승인했지.
비록 무장 투쟁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PLO는 이제 “국가를 세우려는 정부”처럼 인식되기 시작한 거야.
5. 오슬로로 가는 길 – 폭력과 외교의 갈림길에서
1987년에는 팔레스타인 내에서 1차 인티파다(민중 봉기)가 일어나.
이번엔 무장 게릴라가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돌을 던지고 거리를 점령하며 저항했지.
이때부터는 PLO도 전략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그 결과로 1993년 오슬로 협정이 탄생해.
이스라엘과 PLO는 서로를 인정하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만들어졌지.
이건 PLO 입장에서 보면 무력에서 정치로 넘어간 역사적인 전환점이었어.
하지만 완전한 독립국가 수립은 여전히 요원했고,
후에 등장한 하마스 같은 조직은 “PLO는 타협주의자”라며 비난하기도 해.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는 시대에 따라 모습을 바꾸며 생존해왔어.
게릴라였고, 테러리스트였으며, 때로는 외교관이었지.
그들의 길이 옳았는지 그르렀는지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들은 그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절박한 몸부림이었다는 거야.
그리고 그 몸부림은 지금도 팔레스타인 땅 어딘가에서 계속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