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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이야기] 33. 오슬로 협정 – 평화의 희망과 실패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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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끝나지 않는 분쟁 속 작은 희망, 오슬로에서 피어난 대화

1990년대 초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긴장은 여전히 팽팽했어.
1987년에 시작된 1차 인티파다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에 큰 충격을 줬지.


무력보다는 시민 중심의 저항이었고,
TV를 통해 전 세계가 어린 소년들이 군인에게 돌을 던지는 모습을 보며

팔레스타인 문제에 눈을 돌리게 되었어.

 

그 와중에 냉전이 종식되고,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되면서
중동 평화를 중재하려는 시도도 본격적으로 시작됐어.
1991년 마드리드 회담이 열렸고, 이어서 보다 실질적인 결과를 낳은

오슬로 비밀 협상이 1993년 노르웨이에서 진행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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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는 상호 존재를 인정하고
앞으로의 평화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자는 데에 합의하게 돼.


2. 오슬로 협정의 핵심 – 서로를 인정하다

1993년 9월 13일, 전 세계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했어.
미국 워싱턴 DC의 백악관 잔디밭에서,
이스라엘 총리 이츠하크 라빈, PLO 의장 야세르 아라파트,
그리고 중재자인 빌 클린턴 대통령이 함께 서서 악수를 나눴지.



이는 단순한 외교 이벤트가 아니라,
처음으로 두 적대 세력이 서로를 국가적, 정치적 실체로 인정한 역사적 장면이었어.

오슬로 협정의 골자는 다음과 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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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스라엘은 PLO를 팔레스타인 민족의 대표로 공식 인정하고,
  • PLO는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며 테러 행위 포기를 선언했어.
  • 5년 안에 최종 지위를 협상한다는 전제 아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일부 지역에서 행정권을 갖게 되었지.

이 협정은 ‘오슬로 I 협정’으로 불리고,
이후 ‘오슬로 II’ 협정을 통해 더 구체적인 자치 범위와 군정 완화 절차가 논의됐어.

 

3. 평화의 여정, 하지만 쉽지 않은 현실

이 협정을 통해 처음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lestinian Authority)**가 탄생했어.
야세르 아라파트는 이스라엘 땅에서 자치 지도자로 귀환했고,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신들의 지도자를 자국에서 맞이할 수 있게 되었지.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어.


현실은 복잡했고, **‘최종 지위 협상’**이라 불린 예루살렘,

난민 귀환 문제, 정착촌 철거 문제 등은
아예 손도 대지 못한 채 남아 있었어.


이스라엘 내부에선 강경파들이 “테러리스트와 협상은 배신”이라고 외쳤고,
1995년에는 극우 유대인 청년이

총리 라빈을 암살해 버리는 비극까지 일어났어.

 

한편 팔레스타인 내부에서도 하마스와 같은 조직은

“아라파트는 이스라엘에 굴복했다”고 비난하며
폭력과 테러를 이어갔고, 이스라엘은 이에 대한 보복 공격을 감행했지.


그야말로 평화는 협정서에만 존재했고, 현실은

다시 상호 불신과 복수의 악순환으로 흘러갔어.


4. 오슬로의 유산 – 희망이었을까, 환상이었을까

오슬로 협정은 국제적으로 엄청난 환호를 받았고,
아라파트와 라빈, 그리고 이스라엘 외무장관 시몬 페레스
이 협정 덕분에 노벨 평화상까지 공동 수상하게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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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이 협정이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하게 되었지.
이스라엘은 정착촌 확대를 멈추지 않았고,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은

여전히 군사 점령 상태였어.


팔레스타인 측에서는 “약속은 했지만, 진짜 변한 건 없다”는 실망이 커졌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2차 인티파다가 터지며 오슬로 정신은

사실상 파기되었다고 봐야 해.

오슬로 협정은 처음으로 평화의 문을 열었던 시도였지만,
현실의 장벽은 너무 높았고, 상호 불신은 너무 깊었어.


그럼에도 이 협정은 분명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대화의 가능성을 증명한 역사적인 사건이었어.

 

누군가는 오슬로 협정을 실패한 이상주의라고 말해.
하지만 또 누군가는 그 협정이 있었기에 지금도 여전히 협상과

평화의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하지.


피로 얼룩졌던 중동에서, 대화의 테이블이 한 번이라도

제대로 놓인 적이 있다는 것,
그 자체로 역사의 숨구멍 같은 순간이었는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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