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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이야기] 13. 종교재판소의 설치 – 종교의 이름으로 탄압 중세 스페인의 종교적 통합 열망이사벨과 페르난도는 스페인의 국가 정체성을 가톨릭 신앙으로 규정하고, 내부 단합을 위해 종교 통합이 필요하다고 여겼어. 그들은 카스티야와 아라곤 왕국을 통합하면서, **‘가톨릭 군주’**라는 칭호에 걸맞은 통치 이념을 구축하고자 했지. 종교가 곧 정치였던 시대였기에, 종교통합은 곧 정치적 통합으로 이어졌어.1478년, 두 왕은 교황 식스토 4세에게 공식적으로 종교재판소 설립을 청원했고, 결국 교황은 이를 승인했어. 그리하여 ‘스페인 종교재판소(Spanish Inquisition)’가 탄생했지. 이 기관은 단순히 이단을 처벌하는 재판소가 아니었어. 국가의 통합과 왕권 강화, 문화적 순수성과 사회적 통제를 위한 도구였지.이단 색출과 종교적 순수성 확보종교재판소의 핵심 임무는 ‘.. 2025. 6. 30.
[스페인 이야기] 12. 카스티야의 이사벨과 아라곤의 페르난도 – 통일 왕국의 부부 정략결혼의 시작 – 두 왕국의 만남이 두 사람은 단순한 혼인 상대가 아니라, 중세 스페인을 근대 제국으로 이끌어간 주역이었지.이사벨은 카스티야 왕국의 공주였고, 페르난도는 아라곤 왕국의 왕자였어. 두 사람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비밀리에 혼인했는데, 그게 1469년 톨레도에서였지. 당시 카스티야는 후계 분쟁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웠고, 아라곤은 지중해 패권을 놓고 분투하던 시기였어. 이런 상황에서 둘의 결합은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서 스페인 통일의 시작점이 되었지.1474년에 이사벨이 카스티야의 여왕이 되었고, 1479년에는 페르난도가 아라곤 왕으로 즉위하면서 두 왕국이 ‘인물’ 중심으로 결합되었어. 법적으로는 두 나라가 별개였지만, 실제 정치와 군사 활동은 함께 했기 때문에 하나의 나라처럼 움직였지.공동 통.. 2025. 6. 30.
[스페인 이야기] 11. 국토회복전쟁(Reconquista)의 정점 – 그라나다 함락(1492) 무어인의 마지막 왕국, 나스르 왕조그라나다가 함락되기 전, 이슬람 세력은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에서 밀려났지만, 딱 한 군데만 남아 있었어. 바로 그라나다야. 이곳에는 나스르 왕조가 통치하고 있었지. 1238년에 시작된 이 왕조는 250년 가까이 기독교 세력의 공세 속에서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어. 그라나다는 알함브라 궁전으로 유명하고, 이슬람 문화의 찬란한 유산이 남아 있었지. 하지만 국력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고, 주변 기독교 국가들의 압박은 점점 심해졌어.카스티야와 아라곤의 결합 – 결정적 한 수1479년에 카스티야의 이사벨과 아라곤의 페르난도가 혼인 동맹을 맺으면서 스페인 북부는 강력한 기독교 통합 왕국이 되었어. 이 부부는 종교적 열정도 강했고, 국토회복전쟁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지. 그라나다를 정.. 2025. 6. 30.
[스페인 이야기] 10. 톨레도 재정복과 문화적 공존 – 유대인, 무슬림, 기독교인의 도시 톨레도, 이베리아의 중심으로 떠오르다톨레도는 로마 시대부터 중요한 도시였지만, 이슬람 세력에 의해 정복된 뒤에도 여전히 전략적 요충지로 자리 잡고 있었어. 스페인 중부에 있는 이 도시는 타호 강을 끼고 있어서 천연 요새 역할을 했지. 무어인들이 지배하던 시절, 톨레도는 학문과 예술, 행정의 중심으로 크게 발전했어. 특히 이슬람과 유대인 학자들이 교류하면서 지식의 보고가 되었지.그러던 1085년, 카스티야 왕 알폰소 6세가 무슬림으로부터 톨레도를 탈환하게 돼. 이 사건은 스페인 역사에서 아주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됐지. 단순히 한 도시를 정복한 게 아니라, 기독교 세력이 이베리아 반도 중심부로 들어서는 전환점이었어. 그리고 이 톨레도는 이후 수세기 동안 '세 종교가 공존한 도시'라는 별명을 얻게 돼.재정.. 2025. 6. 30.
[스페인 이야기] 9. 카탈루냐·아라곤 연합 – 지중해를 향한 팽창 아라곤 왕국과 카탈루냐 백국, 서로 다른 뿌리중세 이베리아 반도에서 아라곤과 카탈루냐는 각각 독립적인 정치체였어. 아라곤 왕국은 피레네산맥 남쪽에서 기독교 재정복 운동을 펼치던 세력 중 하나였고, 카탈루냐는 카롤루스 대제 시대부터 생겨난 프랑크 왕국의 변경백령에서 발전한 백국이었지. 둘은 출발점이 달랐지만, 1137년 역사적인 결혼을 통해 하나의 정치 공동체로 묶이게 됐어.아라곤의 왕자 람온 베렝게르 4세와 바르셀로나 백작 가문의 공주 페트로닐라가 결혼하면서, 이 둘은 ‘카탈루냐-아라곤 연합왕국’이라는 독특한 형태로 발전하게 돼. 엄밀히 말하면, 두 나라는 단일 국가가 아니라, 국왕을 공유하면서도 법과 행정은 따로 갖고 있었어. 이 구조는 이후 몇 세기 동안 스페인이라는 국가가 형성되는 데에도 영향을 미.. 2025. 6. 30.
[스페인 이야기] 8. 알폰소 10세 – 지식과 법률의 왕 지식과 문화에 매료된 왕의 등장13세기 중반, 카스티야 왕국에는 독특한 성향의 국왕이 등장했어. 그의 이름은 알폰소 10세, 흔히 ‘현명왕(El Sabio)’이라 불렸지. 그는 단순히 영토 확장이나 전쟁에만 관심 있는 중세의 전형적인 왕이 아니었어. 학문, 법률, 역사, 언어, 음악 등 거의 모든 문화 분야에 열정을 보였고, 심지어 직접 책을 쓰기도 했어. 전쟁보다는 책상을 더 자주 마주한 군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알폰소 10세는 1252년에 즉위했는데, 그의 통치 기간은 스페인의 중세 문화가 꽃피운 시기와 겹쳐. 특히 그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지식인들을 한자리에 모아 공동 작업을 지시했는데, 이런 협업은 오늘날의 다문화·다종교 공존의 이상을 생각나게 해. 당시로선 매우 파격적인 자세였지.톨.. 2025. 6. 30.
[스페인 이야기] 7. 나바라·레온·카스티야 왕국의 분립과 통합 북부의 작은 왕국들, 분열 속에 피어난 기독교의 희망무어인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장악한 후, 북부 산악 지대에는 여전히 기독교 세력이 살아 있었어. 펠라요의 아스토리아스 왕국은 그 출발점이었고, 시간이 지나며 이 왕국에서 갈라져 나온 다양한 왕국들이 모습을 드러냈지. 대표적인 게 나바라 왕국, 레온 왕국, 그리고 카스티야 왕국이야. 이들 왕국은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도 했고, 때로는 연합하고, 또 싸우기도 하면서 중세 스페인의 기틀을 형성했지.나바라 왕국의 독립과 고유한 위치나바라 왕국은 피레네 산맥의 서쪽, 오늘날의 스페인과 프랑스 국경 지대에 위치한 왕국이야. 9세기 초에 형성되었고, 이슬람과의 전투 속에서도 독립성을 유지하려 했지. 나바라는 카롤루스 제국(프랑크 왕국)과도 관계를 맺으며 양쪽의 세력.. 2025. 6. 30.
[스페인 이야기] 6. 기독교 왕국의 반격 – 아스토리아스 왕국과 펠라요 이슬람의 물결을 거슬러 오른 작은 불꽃711년에 무어인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침공하면서 서고트 왕국은 무너졌고, 기독교 세력은 대부분 북쪽 산악 지대로 밀려났어. 하지만 이슬람의 파도가 모든 것을 집어삼킨 건 아니었어. 아스투리아스(Asturias)라는 북서부의 험준한 지역에서 한 인물이 조용히 반격의 불씨를 피우고 있었지. 바로 펠라요(Pelayo)였어. 그는 서고트 왕국의 귀족 출신으로 알려져 있고, 무어의 지배에 굴복하지 않고 봉기를 일으켰지.펠라요와 코바돈가 전투 – 전설의 시작722년, 아스투리아스 지역의 코바돈가(Covadonga)에서 펠라요는 무어 군대를 상대로 역사적인 전투를 벌였어. 정확한 전력 규모나 전술은 아직도 논란이 있지만, 이 전투에서 기독교 세력이 승리한 건 분명해. 그리고 이 .. 2025. 6. 30.
[스페인 이야기] 5. 코르도바 칼리프국 – 이슬람 문화의 황금기 이베리아 반도에 꽃핀 이슬람 문명8세기 초, 무어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들어오면서 전쟁과 정복의 시대가 시작됐지만, 이슬람의 코르도바 칼리프국이 들어선 이후엔 이 지역이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문화의 중심지로 떠올랐어. 이슬람은 단순한 군사 세력이 아니라 학문과 예술, 종교와 행정 시스템까지 이베리아 반도에 정착시킨 고등 문명이었지.코르도바, 서유럽 최대의 도시가 되다10세기 초, 코르도바는 단순한 지방 도시가 아니었어. 인구는 무려 50만 명을 넘었고, 70개의 도서관과 수백 개의 목욕탕, 수천 개의 모스크가 있었지. 당시에 유럽의 다른 도시들은 대부분 중세 암흑기에 갇혀 있었는데, 코르도바는 가로등이 켜지고 하수도 시설이 갖춰진, 말 그대로 현대적인 도시였어. 이슬람의 과학, 의학, 철학, 수학이 모두 .. 2025. 6. 30.
[스페인 이야기] 4. 이슬람의 침공(711) – 무어인의 등장과 코르도바 정복 갑작스러운 침공, 바다 건너 온 새로운 세력711년, 이베리아 반도에 거대한 전환점이 찾아왔어. 북아프리카에서 출발한 무슬림 군대가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이베리아 땅에 발을 디딘 거야. 이들은 '무어인'이라 불렸고, 대부분은 베르베르족이었지만 아랍인 사령관의 지휘를 받고 있었어. 당시 북아프리카는 우마이야 왕조의 통치 아래 있었고, 이슬람은 눈부시게 확장하고 있었지. 서고트 왕국은 내부의 분열과 왕위 쟁탈전으로 혼란스러웠고, 그것이 이 침공을 가능하게 만든 결정적 이유 중 하나였어.로데리크 왕의 몰락과 서고트 왕국의 붕괴서고트 왕국의 마지막 왕, 로데리크는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이슬람 군대와 711년경 ‘구달레테 전투’에서 맞서 싸웠어.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지. 무어인들은 전투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2025.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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