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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이야기] 11. 국토회복전쟁(Reconquista)의 정점 – 그라나다 함락(1492)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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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인의 마지막 왕국, 나스르 왕조

그라나다가 함락되기 전, 이슬람 세력은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에서 밀려났지만, 딱 한 군데만 남아 있었어. 바로 그라나다야. 이곳에는 나스르 왕조가 통치하고 있었지. 1238년에 시작된 이 왕조는 250년 가까이 기독교 세력의 공세 속에서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어. 그라나다는 알함브라 궁전으로 유명하고, 이슬람 문화의 찬란한 유산이 남아 있었지. 하지만 국력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고, 주변 기독교 국가들의 압박은 점점 심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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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티야와 아라곤의 결합 – 결정적 한 수

1479년에 카스티야의 이사벨과 아라곤의 페르난도가 혼인 동맹을 맺으면서 스페인 북부는 강력한 기독교 통합 왕국이 되었어. 이 부부는 종교적 열정도 강했고, 국토회복전쟁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지. 그라나다를 정복함으로써 70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이슬람의 존재를 완전히 지우려 했던 거야.

1482년부터 전쟁은 본격화됐어. 기독교군은 점차 나스르 왕조의 영토를 잠식해 들어갔고, 결국 10년 가까운 전쟁 끝에 그라나다 성벽 안으로 몰아넣는 데 성공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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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 항복 – 1492년의 역사적 순간

1492년 1월 2일, 마침내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술탄, **보압딜(Boabdil)**은 그라나다를 페르난도와 이사벨에게 항복했어. 전통적인 기록에 따르면, 보압딜은 성을 떠나면서 고개를 숙이고 마지막으로 성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해. 그래서 지금도 그 장소는 **‘무슬림의 마지막 한숨(El último suspiro del Moro)’**이라고 불려.

페르난도와 이사벨은 알함브라 궁전의 열쇠를 넘겨받고, 스페인 전역에서의 기독교 승리를 선포했어. 이걸로 8세기 초부터 시작된 국토회복전쟁(Reconquista)은 종결되었고, 스페인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되었지.

 

다문화 공존에서 종교적 배타로

초기에는 그라나다에 남은 무슬림들이 기존처럼 생활하는 것이 허용됐어. 항복 조건에는 종교의 자유가 포함되어 있었거든. 하지만 그 자유는 오래가지 않았어. 몇 년 후부터는 강제 개종과 문화적 탄압이 이어졌고, 결국 많은 무슬림과 유대인들이 스페인을 떠나야 했지. 1492년은 단순한 정복의 해가 아니라, 스페인이 ‘하나의 종교, 하나의 왕국’을 지향하는 새로운 국가로 전환하는 순간이기도 했어.

그 결과, 문화적으로는 통일을 이루었지만, 오랜 세월 공존했던 다양성과 관용은 사라지고 말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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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2년의 또 다른 의미 – 새로운 세계의 시작

이 해는 단순히 국토를 되찾은 해만이 아니야. 바로 그 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스페인 국왕의 지원을 받아 신대륙을 향해 출항했지. 그러니까 그라나다 함락은 스페인의 과거를 마무리짓는 사건이면서 동시에, 대항해시대를 여는 출발점이기도 해. 내부의 적을 모두 정리한 스페인은 이제 바깥세계를 향한 팽창을 시작하게 돼.

이렇게 보면 1492년은 스페인 역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해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과거의 싸움을 마무리하고, 제국의 시대를 열어젖힌 거야.

이렇게 해서 스페인은 무슬림 세력의 그림자를 완전히 걷어내고, 유럽의 강력한 기독교 국가로 다시 태어났어.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곧바로 아메리카 대륙으로 눈을 돌리게 되지. 1492년, 이 한 해에 담긴 무게는 정말 어마어마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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