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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이야기] 10. 톨레도 재정복과 문화적 공존 – 유대인, 무슬림, 기독교인의 도시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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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도, 이베리아의 중심으로 떠오르다

톨레도는 로마 시대부터 중요한 도시였지만, 이슬람 세력에 의해 정복된 뒤에도 여전히 전략적 요충지로 자리 잡고 있었어. 스페인 중부에 있는 이 도시는 타호 강을 끼고 있어서 천연 요새 역할을 했지. 무어인들이 지배하던 시절, 톨레도는 학문과 예술, 행정의 중심으로 크게 발전했어. 특히 이슬람과 유대인 학자들이 교류하면서 지식의 보고가 되었지.

그러던 1085년, 카스티야 왕 알폰소 6세가 무슬림으로부터 톨레도를 탈환하게 돼. 이 사건은 스페인 역사에서 아주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됐지. 단순히 한 도시를 정복한 게 아니라, 기독교 세력이 이베리아 반도 중심부로 들어서는 전환점이었어. 그리고 이 톨레도는 이후 수세기 동안 '세 종교가 공존한 도시'라는 별명을 얻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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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복 이후의 정책 – 공존의 기반 마련

알폰소 6세는 군사적으로는 강한 정복자였지만, 통치자로서는 상당히 유연했어. 톨레도를 점령한 뒤 무슬림과 유대인을 즉각적으로 추방하지 않았거든. 오히려 기존의 행정 체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무슬림과 유대인에게 종교와 생활의 자유를 어느 정도 보장했지. 이 덕분에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한 도시에 함께 살 수 있었어.

특히 유대인 공동체는 톨레도에서 크게 성장했어. 이들은 세금 징수, 번역, 행정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이슬람 학문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데도 참여했어. 톨레도는 이렇게 다양한 문명이 만나는 장이 되었고, 단순한 도시 그 이상이 되었지.

지식의 다리, 번역 학교의 탄생

톨레도가 특별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톨레도 번역 학교'의 존재야. 12세기부터 13세기에 걸쳐, 이 학교에서는 이슬람 세계에서 전해진 철학, 의학, 과학, 수학 문헌들이 아랍어에서 라틴어로 번역되었어. 이 작업을 주도한 사람들 중에는 유대인 학자도 있었고, 기독교 수도사들도 있었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갈렌의 의학, 유클리드의 기하학 등이 톨레도를 통해 유럽으로 흘러들어가게 돼. 이게 중세 유럽의 르네상스를 준비한 기반이었어. 그러니까 톨레도는 단순히 종교적으로 공존한 도시가 아니라, 지식의 르네상스를 예고한 문명 교차로였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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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의 그늘 – 점점 사라진 관용의 정신

하지만 이 아름다운 공존도 영원하진 않았어. 시간이 지나면서 기독교 세력은 점점 더 자신들의 우위를 강조하게 됐고, 특히 14세기 이후부터는 유대인과 무슬림에 대한 차별과 억압이 강해졌어. 유대인 공동체는 점차 게토로 몰리고, 1391년에는 스페인 전역에서 반유대 폭동이 벌어지기도 했지. 톨레도도 예외는 아니었어.

그러면서 한때 자유롭고 다채로웠던 톨레도의 분위기는 점차 닫히기 시작했고, 1492년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의 유대인 추방령 이후로는 유대인 공동체도 사라지게 돼. 톨레도는 여전히 아름답고 역사 깊은 도시였지만, 그 안에 깃들었던 다양성과 관용의 정신은 점점 잊혀져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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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남긴 유산

그래도 톨레도는 스페인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상징이야. 이베리아 반도에서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가 서로 충돌하면서도 공존했던, 아주 드문 시기를 담고 있는 도시지. 오늘날에도 톨레도를 걷다 보면 유대인 지구의 좁은 골목, 무데하르 양식의 건물, 그리고 중세 성당과 이슬람식 욕탕이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톨레도는 단순한 유산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문화 간의 공존과 대화의 가능성을 상기시켜주는 상징적인 장소야. 그래서 사람들은 이 도시를 ‘스페인의 영혼’이라 부르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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