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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이야기] 3. 서고트 왕국의 형성 – 로마 몰락 후의 기독교 왕국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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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이 무너진 이후의 혼란

5세기 초, 로마 제국은 더 이상 옛날의 로마가 아니었어. 내부는 부패했고, 외부에선 게르만족이 계속 밀려들어오고 있었지. 그중에서도 서고트족은 아주 강력한 세력이었어. 이들은 원래 동유럽에서 살던 게르만족의 한 갈래였는데, 훈족의 압박을 피해 서쪽으로 이동했지. 처음엔 로마와 싸우다가 나중엔 로마와 협력하는 길을 택했어. 그리고 결국 로마의 허락을 받아 지금의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 지역, 즉 히스파니아에 정착하게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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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고트족, 히스파니아의 새로운 주인이 되다

서고트족은 처음에는 툴루즈를 중심으로 한 갈리아 남부에 자리를 잡았어. 그래서 이 시기를 ‘툴루즈 왕국’이라고 부르기도 해. 하지만 507년, 프랑크족의 클로비스 1세와 전쟁에서 패한 후, 서고트족은 갈리아에서 밀려나 히스파니아로 완전히 자리를 옮겼지.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들의 왕국을 세우게 돼. 그게 바로 우리가 말하는 ‘서고트 왕국’이야. 수도는 처음엔 바르셀로나였고, 나중에는 톨레도로 옮겨졌어. 톨레도는 이후 스페인의 중세 정치와 종교 중심지가 되었지.

아리우스파에서 가톨릭으로의 개종

초기의 서고트족은 아리우스파 기독교를 믿었어. 이건 로마가 채택한 니케아파(정통 가톨릭)와는 달랐기 때문에, 히스파니아 원주민 로마인들과의 종교적 갈등이 컸어. 로마계 히스파니아인들은 대부분 가톨릭 신자였거든. 그래서 두 민족 간의 융합이 쉽지 않았지. 그러던 중 589년, 왕 리카레도 1세가 드디어 가톨릭으로 개종을 선언했어. 이건 정치적으로도 큰 전환점이었고, 종교적 통합을 통해 서고트 왕국의 기반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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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고트 법전과 정치 체계의 정비

서고트 왕국은 단순한 침입자 집단이 아니었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법과 제도를 정비해갔지. 대표적인 게 바로 ‘서고트 법전’이야. 이 법전은 로마법과 게르만 관습법이 절묘하게 섞여 있었고, 라틴어로 쓰여 있었어. 이걸 통해 로마계 주민들과의 법적 통합을 꾀했지. 왕은 귀족들의 회의를 통해 선출됐고, 귀족 회의는 왕권을 견제하는 역할도 했어. 중세 유럽 국가들 가운데에서는 비교적 ‘입헌적인’ 요소를 갖춘 나라였던 셈이야.

무너진 서고트 왕국, 하지만 남은 유산

서고트 왕국은 약 200년 정도 지속됐어. 하지만 8세기 초, 북아프리카에서 이슬람 세력이 들어오면서 큰 위기를 맞이하지. 711년, 우마이야 왕조의 무슬림 군대가 히스파니아를 침공했고, 718년경까지 거의 전역이 함락되고 말았어. 서고트 왕국의 마지막 왕 로데리크는 전투에서 전사했고, 그 후로 이베리아 반도는 이슬람의 통치 아래 들어가게 됐지.

하지만 서고트 왕국은 단순히 사라진 왕국이 아니었어. 이후 기독교 왕국들이 이슬람 세력에 맞서 싸우며 ‘레콩키스타’를 벌일 때, 자신들을 서고트 왕국의 후계자라고 여겼어. 서고트의 유산은 스페인 민족 정체성의 한 부분이 되었고, 법과 종교 체계 등에서도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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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중세가 본격적으로 열리기 전, 바로 이 서고트 왕국이 그 징검다리 역할을 했던 거야. 이들의 흔적은 오늘날에도 건축, 문화, 언어, 종교의 여러 갈래에서 은근하게 남아 있어. 그러니 이 시기는 스페인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장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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