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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이야기] 델리(Delhi)와 뉴델리(New Delhi)이야기 같은 도시 같지만 다른 개념이야.쉽게 말하면, 델리는 큰 지역 이름,뉴델리는 그 안에 있는수도 행정 중심지라고 보면 돼. 1. 델리(Delhi) – 1000년 역사의 ‘고도古都’ 델리는 북인도에 있는넓은 수도권 지역 이름이야.말하자면 서울특별시 같은 개념이지. 델리는 델리 술탄국, 무굴 제국,영국 식민지 시기까지,여러 왕조들의 수도로 선택될 만큼전략적 위치였어.이 안에는 다양한 역사적 지구들이 있어. >올드 델리(Old Delhi) – 무굴 제국 시기의 구시가지>뉴델리(New Delhi) – 영국이 만든 신시가지>남델리, 서델리 등 – 현대의 주거/상업 지역들2. 뉴델리(New Delhi) – 20세기 영국이 만든 ‘신도시’1911년, 영국은 인도 식민 통치의 중심을콜카타(당시 캘커타)에서 델리로 옮기.. 2025. 5. 15.
[인도이야기] 북인도의 이슬람 힌두교가 인도의 전체 다수를차지하는 건 맞지만,북인도, 특히 북서쪽 일부 지역엔이슬람 인구 비중이 높아.그 이유는 단순히 ‘현재의 종교 분포’만이아니라, 수백 년에 걸친 역사적인흐름과 관련이 깊어.왜 북인도 지역, 특히 북서부 지역에이슬람 인구가 많은지역사와 지리를 엮어서 확인해볼게! 현재 인도 내 이슬람 인구 분포 – 어디가 많을까?2024년 기준 인도의 종교 비율은 대략 힌두교 약 78%, 이슬람교 약 14% ,기타 (기독교, 시크교, 불교 등) 약 8%이슬람 인구가 가장 많은 주는 다음과 같아. >우타르 프라데시(북인도)전체 인도에서 무슬림 인구 절대 수가 가장 많아. >비하르, 서벵골(동북부)국경 근처, 방글라데시와 접해 있어서 영향이 커. >잠무-카슈미르(최북단)이슬람 인구 비율이 거의 70% .. 2025. 5. 15.
[인도이야기] 술탄국 시대, 이슬람은 '지배층'의 종교 델리 술탄국 시기에는 이슬람이지배층의 ‘국교’ 역할을 했지만,인도 전체의 국교는 아니었어.왜냐하면 지배자는 이슬람교도였지만,인도 사회의 대다수는 여전히힌두교도였기 때문이야.델리 술탄국을 세운 왕들은모두 이슬람교도였고,수니파 중심의 이슬람 통치를기반으로 삼았어. 통치자(술탄), 고위 관료, 군 지휘관,재무관 등은 대부분 중앙아시아나페르시아 출신의 이슬람인이었지. 이들은 인도에 이슬람 법(샤리아)을 적용했고,이슬람 양식의 궁전, 모스크, 학교 등을 세우며이슬람 문화를 제국의 공식 기반으로 삼았어. 그래서 당시 국가 행정, 법, 외교는이슬람을 기본 질서로 운영됐고,형식적으로는 '이슬람국가'라고 볼 수 있었어.하지만 인도의 대부분은 힌두교도였다당시 인도 인구의 절대다수는힌두교도였어.술탄국의 통치자들도 이 현실을.. 2025. 5. 14.
[인도이야기] 인도와 이슬람의 시작 1. 이슬람의 시작 – 7세기 아라비아에서 이슬람(Islam)은 7세기 초,아라비아 반도(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작됐어. 창시자는 무함마드(Muhammad, 570~632)라는 인물이야.그는 메카에서 태어나,40세에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며유일신 ‘알라’(Allah)를 믿는 종교,이슬람을 전파하기 시작했어.이슬람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어: “신은 오직 하나이며,모든 인간은 평등하다.신 앞에서는 왕도, 거지도 같다.” 2. 무함마드 이후, 칼리프들이 제국을 넓히다무함마드 사후, 그의 후계자들인 칼리프(Caliph)들이이슬람 제국을 급속도로 확장하기 시작했어. 7~8세기 무렵,서쪽으로는 스페인,북쪽으로는 중앙아시아, 동쪽으로는 이란, 아프가니스탄을 넘어결국 인도 국경까지 다다르게 된 거야. 이.. 2025. 5. 14.
[인도이야기] 북인도를 뒤흔든 낯선 깃발– 델리 술탄국의 탄생 인도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인델리 술탄국 시대에 대한 이야기야.이 시기는 단순한 정복의 역사가 아니라,힌두교 세계에 이슬람이라는전혀 다른 문화와 종교가 들어오면서충돌하고, 결국은 섞이고 바뀌는 시대였어. 그만큼 에피소드도 많고 폭력과 융합,파괴와 창조가 함께 얽혀 있는 시대지. 이제 중세 인도의 새로운 장이 열려.이번엔 단순히 외세의 침략이 아니라,전혀 다른 문명과 종교가 인도에 들어와새로운 시대를 연거야.모래바람을 타고 온 칼과 신념12세기 말, 인도의 북서쪽 국경 너머아프가니스탄 고원과 이란 고대 도시들에서무언가 다른 깃발이 올라오기 시작했어.그 깃발엔 초승달과 칼,그리고 코란(이슬람 경전)의 문구가 적혀 있었지. 그들은 말 위에 올라탄 전사들,'알라'를 외치며 국경을 넘어 인도로 들어왔어. .. 2025. 5. 14.
[인도이야기] 신화와 사랑이 춤추는 인도의 고전– 칼리다사의 3대 걸작 이야기 1. 샤쿤탈라 (Shakuntala)– 운명과 기억이 갈라놓은 사랑한 숲 속의 수도원.그곳에서 자란 아름다운 여인샤쿤탈라는 우연히 사냥을 나온왕 두샤얀타와 만나.둘은 서로에게 반하고,비밀리에 결혼을 했어.하지만 왕은 궁으로 돌아가야 했고,샤쿤탈라는 뒤늦게 임신한 몸으로왕을 찾아가려 하지. 그런데…운명의 장난처럼,샤쿤탈라가 마법사의 저주를 받아왕이 그녀를 완전히 잊어버리게 돼. 왕은 샤쿤탈라가 누구인지전혀 기억하지 못하고,그녀는 절망 속에 쫓기듯 떠나게 되지. 시간이 흘러,그들의 아들이 성장하고,우연한 계기로 왕은 기억을 되찾아다시 그녀를 만나게 돼. 사랑은, 그렇게 돌아온거야.인도 문학사상 가장 아름다운사랑 이야기 중 하나이고 자연과 인간의 감정을 정교하게연결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어. 왕의 사랑과 책임.. 2025. 5. 14.
[인도이야기] 인도 수학, 왜 역사적으로 유명했을까? 인도는 예전부터 수학의 본고장 중하나로 여겨졌고,지금도 수학, IT, 공학 분야에서강국으로 인정받고 있어.그 뿌리는 진짜 오래전, 굽타 제국 시기와그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1. ‘0’의 개념을 세계 최초로 체계화‘0’이라는 숫자 자체는 고대 바빌로니아나마야 문명에서도 흔적이 있어. 하지만 ‘0’을 자리값 개념으로 활용해서,다른 숫자들과 함께 연산에 쓰기시작한 건 인도가 처음이야. 예를 들어, 123에서 ‘2’는 십의 자리,‘3’은 일의 자리.그럼 ‘10’은 어떻게 표시하지?→ 중간에 '0'이 없으면 의미 전달이 안 되겠지.이 ‘0’ 덕분에 '위치적 숫자 체계(place value system)'가 탄생했고,지금 우리가 쓰는 10진법 숫자의 기초가 된 거야. 이 개념을 만든 수학자가 바로 굽타 시대의아리.. 2025. 5. 13.
[인도이야기] 신과 수학이 함께 춤추던 시절– 굽타 제국, 인도의 문화 황금기 1. 칼보다는 펜, 검보다 지혜마우리아 제국 이후한동안 분열됐던 인도는'찬드라굽타 1세'가 굽타 제국을 세우며다시 통일되기 시작했어.하지만 그는 전쟁보다 혼인 동맹과외교로 영토를 넓혔고,그 뒤를 이은 '사무드라굽타'와'찬드라굽타 2세'는 정복보다는안정과 문화의 발전에 힘을 쏟았지. 이 시대를 두고 후대 사람들은 이렇게 불렀어.'인도의 황금기'그 말엔 과장이 없었어.이 시기에는 정말 사람, 지식, 신앙, 예술이서로 엉키고 퍼지며무르익은 열매처럼 영글어 있었으니까.2. 산스크리트 문학의 전성기이 시대는 산스크리트어 문학의 황금기야.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칼리다사(Kalidasa).그는 시, 연극, 서사시 등산스크리트 문학의 모든 장르를 넘나든 천재였어. 그의 대표작 는사랑, 운명, 자연, 인간의 감정을시처럼 .. 2025. 5. 13.
[인도이야기] 지혜가 피어나던 시대 – 굽타 제국과 인도의 황금기 고대 인도 역사에서 가장 찬란했던 시기,바로 굽타 제국 시대의 이야기야.불교와 자이나교의 격동기를 지나인도는 다시 힌두교 중심의 황금기를 맞이해. 하지만 이건 단순히 종교의 복귀가 아니라,수학, 문학, 과학, 예술이 모두 꽃핀 시대,다시 말해 인도 고전 문화의 정점이야.전쟁의 시대는 지나가고…아소카가 죽고 난 뒤,마우리아 제국은 점점 약해졌어.수많은 작은 왕국들이 다시 들고일어났고,인도는 다시 분열의 시기로 돌아가게 돼. 하지만 세월이 흘러,4세기 초, '찬드라굽타 1세'라는 인물이북인도의 강력한 세력들을 하나씩 하나씩통합하면서 다시 제국이 세워지게 돼. 이름은…어디서 많이 들어봤지? 굽타(Gupta) 제국.'찬드라굽타 1세'는 굽타 제국의 창건자야.이름은 아소카의 할아버지인 '찬드라굽타'마우리아 시대의.. 2025. 5. 13.
[인도이야기] 아소카 대왕 – 칼을 버리고 마음으로 다스린 황제 전쟁에서 눈을 뜨고, 마음으로 다스리다:피로 물든 왕의 즉위아소카는 찬드라굽타의 손자였어.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위대한 황제로 불린 건 아니었어.그의 젊은 시절은 잔혹하고 피로 얼룩져 있었지. 왕위 경쟁에서 형제들을 죽였고반란을 철저히 진압했으며말 그대로 '칼'로 자리를 차지한 황제였어. 사람들은 그를'잔인한 아소카'라고 불렀어.그런 아소카가 진짜로 변하게 되는 건바로 한 전쟁 때문이었지.칼링가 전쟁 – 피의 바다, 그리고 눈물의 각성 아소카는 재위 초반,동쪽의 칼링가 지역을 정복하려고전쟁을 일으켰어. 칼링가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칼링가는 인도의 역사적인 지역이다. 비록 그 경계가 지배자들의 영토에 따라 변동이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갠지스강과 고다바리강 사이.. 2025.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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