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야기] 원나라의 몰락, 그리고 주원장
끝나지 않은 야망 – 정복과 패배앞서 말했듯이 쿠빌라이 칸은칭기즈 칸이 창건한 몽골 제국을,문명과 통치를 결합한'국가'로 바꾼 인물이었어. 유목과 농경, 동양과 서양,무력과 행정이 교차하던 시기의 황제였지. 쿠빌라이는 중국에 머물렀지만,몽골의 유산인 '정복욕'을 버리진 않았어. 두 차례나 대군을 보내 일본 정벌에 나섰지만태풍(카미카제)에 막혀 실패했지.베트남, 자와(인도네시아), 미얀마 등원정도 시도했지만 지형과 기후,병력 손실 등으로 고전했어. 그의 말년엔 정복보다는 통치에 힘썼고,지속적인 반란, 재정 악화, 내부 불만에 시달리며지쳐 갔지. 죽음과 쇠퇴의 시작1294년, 쿠빌라이 칸은79세의 나이로 사망했어.그의 죽음 이후 원나라는 점점 약해졌고,후계자들은 쿠빌라이처럼 강력하지 못했어. 세금은 늘어나고..
2025. 5. 7.
[중국이야기] 쿠빌라이 칸과 원나라의 탄생-황제국 '원나라'
유목의 후계자, 문명의 통치자칭기즈 칸의 손자들 중에서도쿠빌라이는 좀 달랐어. 그는 어릴 때부터 유학자들과 교류하며중국식 문명에 관심이 많았고,단순한 유목민 지도자가 아니라정치, 경제, 행정, 문화까지 이해한 사람이었지. 칭기즈 칸의 넷째 아들인'툴루이'의 아들이자,몽골 제국의 계승권을 놓고 벌어진내전에서 승리하면서 '대칸' 자리에 올랐어. 중국의 황제가 되다 – 원나라 건국1260년, 그는 대칸이 되었지만중국에 더 집중하기로 결심해. 그리고 1271년,중국의 통치자임을 선언하면서국호를 ‘원(元)’이라 정했지.이는 '하늘(천)의 근원'이라는뜻에서 나온 말이야. 그는 수도를 지금의 베이징(당시의 대도)으로 옮기고드디어 1279년, 남송을 멸망시키며중국 전체를 손에 넣어. 그렇게 해서몽골의 유목 제국이, 중..
2025. 5.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