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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야기] 황제가 끌려간 날 – 명나라를 뒤흔든 토목의 변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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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지키러 간 황제, 오히려 잡히다

1449년, 명나라엔 젊은 황제

정통제가 있었어.
근데 이 황제는 아직 어리고 경험이 없었지.


그 옆엔 환관 왕진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황제 귀에 쏙쏙 들어가는

말을 하면서 권력을 휘둘렀어.

 

그러던 어느 날, 북쪽의 오이라트족

(몽골 계열 유목민)이 국경을 넘었어.
왕진은 이걸 기회 삼아 정통제를 부추겼지.


"폐하가 몸소 나가서 적을 무찌르면

백성들이 더 존경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정통제는 대군을 이끌고

직접 북쪽 전쟁터로 나가게 돼.

 

하지만 문제는 준비가 엉망이었어.
보급도 부족하고, 전략도 허술했지.

 

결국 군대는 허겁지겁 후퇴하게 되고,
‘토목보’라는 곳에서 매복에 걸려

명나라 군대는 대패하고 말았어.

황제가 포로가 되다

더 충격적인 건 그 다음이었어.
정통제, 즉 당시의 황제가

몽골 오이라트족에게 생포당한 거야.


중국 역사상 손에 꼽히는 대망신이자

국가 위기의 순간이었지.

 

황제를 뺏긴 조정은 어쩔 줄 몰랐고,

결국 황제의 동생을 새 황제로 세웠어.


이때 황제가 둘이 생긴 거야.
포로로 잡힌 ‘정통제’와,

북경에서 즉위한 ‘경태제’.

돌아온 황제, 돌아가지 못한 자리

오이라트족은 황제를 풀어주면서

협상을 시도했지만, 명나라는 거절했어.


그렇게 몇 년 후, 정통제는 포로 생활을 마치고

명나라로 돌아오게 돼.

 

근데 돌아온다고 해서

황제 자리를 돌려주는 건 아니었지.


이미 새 황제가 있는 상황이니까.

결국 정통제는 한동안

‘상왕’으로 조용히 지내다가,
나중에 쿠데타로 동생을 몰아내고

다시 황제 자리에 올라.


이때는 이름을 바꿔서 '천순제'라고 불리게 돼.

명나라의 상처, 그리고 후유증

토목의 변은 단순한 전투의 패배가 아니었어.


나라가 얼마나 준비가 부족했고,
왕이 직접 나서는 게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지.

 

이 일 이후로 명나라는 외적으로

훨씬 더 신중해졌고,
환관들의 권력이 더욱 커지게 되었어.


그러면서 나라의 내부는 더더욱 불안정해졌지.

 

이 사건은 명나라가 무너지는 과정에서
'언제부터 내부가 망가지기 시작했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포인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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