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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이야기] 신과 수학이 함께 춤추던 시절– 굽타 제국, 인도의 문화 황금기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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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칼보다는 펜, 검보다 지혜

마우리아 제국 이후

한동안 분열됐던 인도는
'찬드라굽타 1세'가 굽타 제국을 세우며

다시 통일되기 시작했어.


하지만 그는 전쟁보다 혼인 동맹과

외교로 영토를 넓혔고,
그 뒤를 이은 '사무드라굽타'와

'찬드라굽타 2세'는 정복보다는

안정과 문화의 발전에 힘을 쏟았지.

 

이 시대를 두고 후대 사람들은 이렇게 불렀어.

'인도의 황금기'

그 말엔 과장이 없었어.
이 시기에는 정말 사람, 지식, 신앙, 예술이
서로 엉키고 퍼지며
무르익은 열매처럼 영글어 있었으니까.

2. 산스크리트 문학의 전성기

이 시대는 산스크리트어 문학의 황금기야.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
칼리다사(Kalidasa).
그는 시, 연극, 서사시 등
산스크리트 문학의 모든 장르를 넘나든 천재였어.

 

그의 대표작 <샤쿤탈라>는
사랑, 운명, 자연, 인간의 감정을
시처럼 아름답게 담은 연극이고,


당시 인도뿐 아니라
중국, 동남아시아, 아랍 세계에서도 극찬받았어.

또 다른 작품 <메가두타(구름의 전령)>에서는
구름을 통해 연인을 그리워하는

남자의 마음을 노래하지.

“너는 하늘을 건너는 자.
내 마음을 실어 그녀에게 전해다오.”

 

정치적인 제국은 사라져도,
이런 시 한 줄은 천 년을 넘게 살아남았지.

3. 0의 발견, 수학의 혁명

굽타 시대의 수학자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
바로 '아리아바타(Aryabhata)'야.

 

그는 단순히 수만 계산한 게 아니라
우주의 움직임, 천체의 원리,
그리고 우리가 지금도 쓰는
0의 개념을 체계화했어.

당시 그의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어.

“하나에서 아무것도 빼면, 남는 것은 무(0)이다.
그 무는 수를 있게 하고, 없게도 만든다.”

 

그가 계산한 원주율 값(π = 3.1416...),


지구의 자전, 일식·월식의 원리 설명은
그 당시 유럽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어.

 

심지어 그는 지구는 둥글고

자전하고 있다고 주장했지.

 

코페르니쿠스보다 1000년은 앞선 생각이야.

4. 신들이 살아 숨 쉬는 사원 예술

이 시기의 종교는 힌두교 중심으로

돌아왔지만, 불교와 자이나교도 함께 공존했어.

 

힌두 사원은 신화 속 이야기와

상징들을 조각으로 담아냈고,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종교, 철학, 수학이 합쳐진 예술 공간이었지.

특히 유명한 건축 양식으로는
'나가라 양식(북인도식 사원)'이 있어.

 

높은 탑과 섬세한 조각,
신들의 탄생과 전쟁,

사랑과 구원 이야기가
벽면 곳곳에 살아 숨 쉬듯 새겨졌어.

 

사원은 그냥 신을 모시는 곳이 아니었어.
사람들이 세상의 원리와 진리를

눈으로 ‘보는 공간’이었지.

5. 학문도, 믿음도 국경을 넘다

굽타 제국은 문화적으로만

풍요로웠던 게 아니야.
외국 사신과 승려, 상인들이

이 시대 인도를 끊임없이 방문했어.

 

가장 유명한 이방인은
중국 당나라의 승려 '파쉬엔(法顯)'이야.


그는 인도를 순례하며
“이곳의 불교는 정통이며,
사람들은 친절하고 질서 정연하다”고 기록했지.

'날란다 대승원'도 이때 성장했어.


이곳은 단순한 수도원이 아니라,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고등 교육기관이었어.

수천 명의 학생이
철학, 불교, 수학, 의학을 배우고 있었지.

6. 머리와 마음이 함께 빛났던 시대

굽타 제국은
세계 어디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문학, 수학, 천문학, 종교, 예술의 융합 시대였어.

 

칼리다사의 문장,
아리아바타의 숫자,
산스크리트어의 리듬,
사원의 조각과 신화…

 

이 모든 것이
오늘날 우리가 “인도”라고 떠올리는

이미지의 뿌리야.

 

전쟁으로 지배한 시대가 아니라,
지식으로 감동을 줬던 시대.

 

그게 바로
굽타 제국이 ‘황금기’로 불리는 이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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