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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이야기] 아소카 대왕 – 칼을 버리고 마음으로 다스린 황제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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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눈을 뜨고, 마음으로 다스리다

:피로 물든 왕의 즉위

아소카는 찬드라굽타의 손자였어.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위대한 황제로 불린 건 아니었어.

그의 젊은 시절은 잔혹하고 피로 얼룩져 있었지.

 

왕위 경쟁에서 형제들을 죽였고

반란을 철저히 진압했으며

말 그대로 '칼'로 자리를 차지한 황제였어.

 

사람들은 그를
'잔인한 아소카'라고 불렀어.

그런 아소카가 진짜로 변하게 되는 건
바로 한 전쟁 때문이었지.

칼링가 전쟁 – 피의 바다, 그리고 눈물의 각성 

아소카는 재위 초반,
동쪽의 칼링가 지역을 정복하려고

전쟁을 일으켰어.

 

 

칼링가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칼링가는 인도의 역사적인 지역이다. 비록 그 경계가 지배자들의 영토에 따라 변동이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갠지스강과 고다바리강 사이의 동부 해안 지역으

ko.wikipedia.org

출처 위키백과

 

그건 아주 치열한 싸움이었고,
결국 승리했지만
10만 명 이상이 죽고,


15만 명이 포로가 되었고,
수도는 잿더미가 되었어.

 

아소카는 전쟁이 끝난 후
시체가 널린 전장을 보고 울었대.

 

“이게… 이게 내가 이기고 싶었던 거였나?”

그 순간, 그는 칼을 내려놓기로 결심해.

 

그리고 그가 향한 곳은…
붓다의 가르침이었어.

불교로 돌아선 황제

아소카는 칼링가 전쟁 이후
불교에 귀의했고,
이제는 나라 전체를 다르마(법, 진리)의 길로

이끌겠다고 선언해.

그의 정치 철학은
무력으로가 아니라,
자비와 정의, 평화로 다스리는 것이었지.

 

그가 세운 법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묻는 철학이었어.

석주와 바위에 새긴 다르마

아소카는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말로만 남기지 않았어.

 

그는 제국 전역에
수십 개의 석주(기둥)와 바위 비문을 세웠어.

그 비문엔 이런 말들이 새겨져 있었지.

  • “모든 생명을 소중히 하라”
  • “형벌보다 용서가 더 큰 법이다”
  • “다른 종교도 존중하라”
  • “백성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이 진짜 왕의 일이다”

놀라운 건,
이 비문들이 왕궁이나 사원 안이 아니라,
길목과 시장, 마을 입구 같은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세워졌다는 거야.

제국을 넘어선 불교의 길

아소카는 자신만 변화한 게 아니라,
그 변화된 마음을 가지고
불교를 인도 전역, 그리고 국경 너머까지 전파했어.

  • 실론(지금의 스리랑카)
  •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
  • 심지어는 그리스, 이집트까지
    불교 사절과 승려, 가르침을 보냈지.

지금도 스리랑카 불교는
“아소카 황제의 선물”이라고

여겨질 만큼 깊은 영향을 받았어.

가장 강한 황제, 가장 부드러운 통치

아소카의 제국은
군사력으로는 확장되지 않았지만,
마음과 철학으로 수많은 백성을 감동시켰어.

 

그는 말년에 연꽃을 들고,

백성들과 대화를 나누며

사원에 들르는 황제가 되었고,
그의 이름은 후대에
인도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군주로 남았지.

 

오늘날 인도 국장의 중앙,
바로 그 아소카의 사자 석주(기둥)가
지금도 인도의 상징이야.

 

 

인도의 국장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ko.wikipedia.org

출처 위키백과

 칼을 버리고, 마음을 지킨 황제

아소카는
싸움으로 왕이 되었지만,
자비로 제국을 지킨 사람이었어.

 

그는 “가장 많은 땅을 가진 왕”이 아니라,
가장 많은 마음을 얻은 황제였지.

그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지만

 그의 가르침은 지금도 길가에 세워진 돌 위에,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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