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과 변화의 멕시코
1907년, 멕시코의 작은 마을 코요아칸에서
작고 눈빛 강한 소녀가 태어났어.
그 시절 멕시코는 혁명과 사회 변화가 한창이었어.
가난한 이들과 여성, 예술가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지.
이 격동의 시대,
프리다는 단지 그림만 잘 그리는
소녀가 아니었어.
어릴 때부터 누구보다 똑똑하고,
자기 생각이 뚜렷했지.
하지만 프리다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어.
열일곱,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사고
17살 어느 날, 프리다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했어.
몸은 뼈가 여러 군데 부러지고,
내장과 척추도 크게 다쳤지.
그 이후 프리다는 수십 번의 수술을 받아야 했고,
오랜 시간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했어.
그런데 이 고통 속에서
프리다는 특별한 결심을 해.
"몸은 아프지만, 손은 아직 움직일 수 있어."
침대에 누운 채로 거울을 천장에 걸고,
자신을 그리기 시작했지.
그림이 그녀의 삶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숨결이 되었어.
그녀의 그림: 아름다움이 아닌, 진짜 나
프리다의 그림은
아름다운 풍경이나 예쁜 얼굴이 아니었어.
- 목에 가시가 박힌 자화상
- 유산 후의 피눈물 나는 마음
- 사랑하는 남편에게 배신당한 상처
이런 그림을 사람들이 처음 봤을 때는
“이게 뭐야, 너무 솔직하고 무섭잖아!” 했지.
하지만 그것이 바로 프리다의 진짜 힘이었어.
그녀는 “여자가 이런 그림을 그려도 돼?”라는
말에 미소 지으며 말했어.
“나는 내 고통을 그리고, 그것으로 살아간다.”
디에고 리베라와의 이야기 (사랑과 상처)
프리다는 멕시코의 유명한 벽화 화가
디에고 리베라와 열렬한 사랑을 했어.
그는 그녀보다 두 배는 컸고, 그림도 거칠었어.
둘은 결혼했지만,
디에고는 프리다를 수없이 아프게 했어.
심지어 프리다의 여동생과도 관계를 맺었지.
그래서 프리다는 아파하면서도,
다시 그와 재결합해.
사랑조차 고통 속에서 예술로 바꿔버린 그녀,
그림 안엔 디에고에 대한 미움과 그리움이
절묘하게 섞여 있었어.
“나는 내 다리가 필요 없다”
프리다는 말년에 다리까지 절단하게 되었어.
그녀는 점점 더 병약해졌지만,
붓을 놓지 않았어.
친구들이 걱정하며 물었지.
“이제 어떻게 그림을 그려?”
그녀는 이렇게 말했어.
“다리가 왜 필요해?
나는 날 수 있는 날개가 있는데.”
이 말은 프리다의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이 아닐까?
삶의 마지막 전시, 그리고 전설이 되다
프리다는 마지막 개인 전시에
침대에 실려 등장했어.
사람들은 감동과 경외로
그녀를 바라봤지.
그녀는 1954년,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오늘날 그녀의 그림은 전 세계 갤러리에서
가장 뜨겁게 주목받는 작품이 되었어.
프리다 칼로는 아픔을 숨기지 않은 화가였어.
그녀는 “아픔도 나의 일부”라고 말하며
그림 속에 눈물도, 사랑도, 자기를 그대로 담았지.
그 덕에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그림을 보며 위로를 받고 있어.
“나는 내 자신을 그린다.
내가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니까.”
이 짧은 말이 프리다의 전부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