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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이야기] 34. 유럽 통합과 프랑스 – 유럽연합의 핵심 주역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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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난 뒤 유럽은 너무나도 무너져 있었어. 도시와 공장은 폐허가 됐고, 사람들은 다시는 그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지. 그래서 나온 생각이 있었어.
“서로 무기를 겨누지 않으려면, 아예 함께 움직이자.”
프랑스는 바로 그 유럽 통합의 씨앗을 뿌린 나라 중 하나였고, 지금까지도 유럽연합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핵심 주역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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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망 선언 – 유럽 통합의 시작은 프랑스에서

1950년, 프랑스 외무장관 로베르 슈망(Robert Schuman)이 역사적인 발표를 해.
프랑스와 독일의 석탄과 철강 산업을 공동 관리하자는 제안이었지.
이건 단순한 경제 협력이 아니라, 전쟁의 원료가 되는 산업을 함께 운영함으로써 다시는 싸우지 않도록 하자는 평화의 계획이었어.

이 슈망 선언은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로 이어졌고, 여기에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베네룩스 3국(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이 참여하게 돼.
이게 바로 지금 유럽연합(EU)의 전신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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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골은 유럽 통합에 찬성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유럽 통합을 말하면서도 드골은 유럽 공동체에 대해 조심스러웠어.
그는 프랑스가 독일에 종속되는 걸 극도로 경계했거든.
그래서 유럽이 하나가 되되, “국가의 주권은 확실히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었어.

드골은 영국의 유럽공동체 가입을 두 번이나 거부했어. 이유는 간단했어.
영국은 미국과 너무 가깝기 때문에, 미국의 입김이 유럽에 들어오는 걸 막고 싶었던 거지.
그만큼 드골은 프랑스가 유럽의 중심에서 독립적으로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고 믿었어.

유로화 도입, 프랑스의 흔들림과 결단

시간이 흐르면서 유럽 통합은 점점 구체적인 형태를 갖춰가.
1992년에는 마스트리흐트 조약을 통해 유럽연합(EU)이 탄생했고, 1999년에는 유로화가 도입됐어.

프랑스 안에서도 유로화 도입을 두고 논쟁이 많았어.


“경제 주권을 넘겨주는 거 아니냐”, “유럽은행이 프랑스 경제를 통제하게 되는 거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결국 프랑스는 유럽의 통합을 선택했어.
독일과 함께 유로존(유로를 사용하는 국가들의 모임)의 양대 축이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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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에서만 움직이지 않는 프랑스

프랑스는 유럽연합 내에서 경제, 외교, 국방, 문화 모든 분야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어.
특히 공동 농업 정책(CAP)은 프랑스 농민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정책이고, 프랑스가 EU에서 가장 강력히 밀어붙인 분야야.

또한 프랑스는 유럽방위군 창설에도 적극적이야.
미국 중심의 NATO 외에도, 유럽만의 군사력을 키우려는 노력에서 프랑스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지.

유럽에서 어떤 사안이 논의되든, 프랑스 없이는 결론이 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커.

유럽 속 프랑스, 프랑스 속 유럽

물론 유럽 통합이 항상 순조롭지는 않았어.
2005년엔 EU 헌법 초안을 놓고 프랑스 국민투표에서 부결되기도 했어.
프랑스 국민들은 “이게 너무 엘리트들만의 유럽 아닌가?”, “우리 삶은 나아지지 않는데 무슨 통합이냐”는 불만을 표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지금도 유럽의 중심국가로 남아 있어.
유럽연합을 통해 경제적 연대, 문화 교류, 외교 협력을 이어가고 있고, 프랑스의 정체성도 이제는 ‘유럽 속 프랑스’로 설명되는 시대가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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