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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이야기] 32. 샤를 드골과 제5공화국 – 대통령 중심제의 시작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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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제4공화국이라는 체제를 만들었어. 겉보기엔 민주주의였고, 나름대로 선거도 하고 의회도 있었지. 하지만 문제는 너무 자주 정부가 바뀌고, 정치가 불안정했다는 거야. 그 틈을 타서 알제리 전쟁이라는 식민지 문제까지 터지면서, 결국 프랑스는 또다시 혼란에 빠지게 돼. 그리고 그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샤를 드골이 다시 무대에 등장하게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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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공화국의 위기 – 연이은 정권 붕괴와 식민지 전쟁

제4공화국은 1946년에 시작됐어. 의회 중심의 내각책임제로 운영됐지. 그런데 문제는 정권이 너무 자주 바뀌었다는 거야. 총리들이 1년도 못 가서 물러났고, 정당들은 서로 합의점을 찾지 못했지. 국민들은 정치에 대한 신뢰를 잃어갔어.

그러던 중, 알제리 전쟁(1954~1962)이 터졌어. 프랑스는 알제리를 단순한 식민지가 아니라 ‘본국의 일부’로 여겼기 때문에, 독립을 요구하는 알제리 민족주의자들과의 충돌은 더욱 격렬했지. 이 전쟁은 프랑스 안에서도 갈등을 불러왔고, 군부의 반란 위기까지 만들어냈어.

1958년, 프랑스는 사실상 내전 직전 상태까지 갔고, 사람들은 이렇게 외쳤지.
“드골을 불러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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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골, 다시 정계로 복귀하다

샤를 드골은 전쟁이 끝난 직후 잠깐 임시정부 수반을 맡았지만, 제4공화국의 정치 구조를 비판하며 곧바로 물러났어. 그는 그 뒤로 조용히 있었지만, 정치인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카리스마와 도덕적 권위를 가지고 있었지.

1958년 5월, 군부 쿠데타 위기까지 생기자, 대통령이 드골에게 국가를 다시 맡아달라고 요청하게 돼. 그리고 드골은 헌법 개정을 조건으로 복귀해. 이제 그는 단순히 위기를 수습하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 질서를 만드는 설계자가 된 거야.

제5공화국의 탄생 – 대통령 중심제의 도입

1958년 9월, 드골이 주도한 새 헌법이 국민투표에 부쳐졌고,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됐어. 그렇게 해서 프랑스는 제5공화국으로 넘어가게 돼. 이 공화국의 핵심은 바로 대통령 중심제였어.

  • 대통령이 외교, 국방, 국가 비상사태에 대한 강력한 권한을 가졌고
  • 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며, 의회에 대해서는 일정한 견제 장치가 있었지
  • 의회보다 대통령이 훨씬 더 중심에 서는 정치 시스템이 만들어졌어

이건 불안정한 제4공화국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이었고, 국민들은 강한 리더십을 원했기 때문에 대체로 환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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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골의 통치 – 카리스마와 논쟁의 리더십

드골은 1959년, 제5공화국의 첫 대통령으로 당선됐어. 그는 외교적으로도 독자 노선을 걸었어. 미국 중심의 NATO 체제에서 프랑스의 군사 독립을 주장했고, 핵무기 개발도 추진했지. 또한 식민지 해방에 대한 결단도 내렸어. 오랜 전쟁 끝에, 결국 1962년 알제리 독립을 인정한 것도 드골이었지.

하지만 그의 통치는 항상 순탄하진 않았어. 권위주의적이고 고집 센 태도 때문에 학생과 노동자들 사이에 불만이 쌓였고, 1968년에는 결국 5월 혁명이 터지게 돼. 전국적인 시위와 파업 속에서 드골은 정권이 흔들리는 위기를 맞기도 했지.

퇴장, 그러나 프랑스를 바꾼 인물

드골은 1969년, 국민투표에서 패배하자 깨끗하게 정계를 떠났어. 그리고 1년 뒤 세상을 떠났지. 하지만 그가 남긴 건 단지 대통령직이 아니었어. 프랑스 정치의 구조 자체를 바꿔놓은 사람이었고, 위기의 순간마다 국민들에게 기댈 수 있는 리더로 기억된 인물이었지.

제5공화국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고, 프랑스는 여전히 대통령 중심제로 운영되고 있어. 그의 통치 방식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긴 해도, 드골이 현대 프랑스를 만든 중심축 중 하나였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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