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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이야기] 28. 제3공화국 – 흔들리는 공화정, 강한 민중의 힘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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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나폴레옹 3세가 보불전쟁에서 패하고 포로로 잡히면서 프랑스의 제2제정은 무너졌어. 갑작스런 몰락 뒤, 프랑스는 급하게 공화국 체제로 복귀했지. 그렇게 시작된 게 바로 제3공화국이야. 하지만 처음부터 탄탄했던 건 아니었어. 공화국은 늘 왕정 복귀의 위협, 내부의 혼란, 외세의 압박 속에 있었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이 계속됐어. 그래도 프랑스 민중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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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출발한 공화정, 내부는 뒤숭숭했어

보불전쟁이 한창이던 1870년 9월, 파리 시민들이 루이 나폴레옹을 끌어내리고 공화국을 선포했어.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지. 독일군이 파리를 포위했고, 내부에선 왕당파와 공화파가 서로 싸우고 있었어.

그 와중에 파리 시민들이 만든 파리 코뮌까지 등장하면서, 프랑스는 말 그대로 안팎으로 난리였어. 중앙정부는 베르사유에 몸을 피했지만, 왕정 복고파가 대거 국회에 들어오면서 공화국 체제는 위태로웠지. 처음 몇 년은 그야말로 위태위태했어.

왕정이 돌아올 뻔한 순간

사실 제3공화국은 초반에 "잠깐 세워 놓은 체제"였어. 왕정이 다시 복귀할 가능성이 컸거든. 실제로 보나파르트파, 오를레앙파, 부르봉파 같은 왕정 지지 세력들이 국회에서 서로 눈치 싸움을 하고 있었어. 후계자 문제만 합의됐으면 진짜로 왕이 돌아올 뻔했지.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 부르봉 가문의 앙리 백작이 왕이 되면 삼색기를 없애고 옛 왕가 깃발을 쓰겠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합의가 깨졌어. 덕분에 공화파는 시간을 벌었고, 점점 세를 키워가기 시작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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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 속에서도 뿌리를 내려간 공화정

왕정 위기는 넘겼지만, 공화국은 여전히 불안정했어. 정부가 자주 바뀌고, 총리가 몇 개월마다 교체되는 일도 흔했지. 그런데 그 와중에도 정치 제도는 하나하나 만들어졌어.

  • 의회 중심의 내각제
  • 공립 교육 확대
  • 언론의 자유
  • 보통 선거의 확대

이런 제도들은 민중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이었어. 특히 무료 세속 공교육의 확대는 정말 중요했지. 이때 자란 세대는 왕보다 공화국이 당연한 시대를 살아가게 됐거든.

공화국을 흔든 사건들 – 스캔들과 분열

하지만 제3공화국은 안정되기까지 수많은 위기와 갈등을 겪었어. 대표적인 게 불란서-튀르크 스캔들, 부패 사건, 그리고 드레퓌스 사건 같은 일들이었지. 특히 드레퓌스 사건은 나라를 두 쪽으로 갈라놨어.

한 유대인 장교가 스파이 혐의로 누명을 쓰고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군 내부의 조작이었던 거야. 이걸 바로잡으려는 지식인들과, 그걸 막으려는 보수 세력 간에 엄청난 논쟁과 대립이 벌어졌지. 이 사건은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할게.

또한 노동자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도 점점 커지기 시작했어. 자본주의의 그늘에서 고통받던 사람들이 공화국이 정말 자신들을 위한 체제인지 회의하기 시작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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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속에서도 민주주의는 성장했어

놀라운 건, 이런 위기 속에서도 제3공화국은 70년이나 지속됐다는 거야. 왕정 복고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고, 프랑스 국민은 점점 공화주의의 가치를 받아들이게 됐어.

선거로 정권이 교체되는 게 당연해졌고, 시민 사회와 언론의 힘도 계속 커졌어. 국민들은 단순히 통치받는 존재가 아니라, 정치에 참여하고 책임지는 시민이 되었지. 공화국은 처음엔 불안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튼튼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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