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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이야기] 24. 워털루 전투와 몰락 – 다시 섬으로 추방되다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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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유럽의 절반을 지배하던 황제가 있었어. 전투에선 거의 지지 않았고, 무수한 적국을 상대로도 당당했지. 그런데 그런 나폴레옹이 마지막 전투에서 처참하게 무너지게 돼. 그게 바로 워털루 전투였어. 이 전투는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한 제국의 끝이었고,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이 역사 속으로 내려가는 순간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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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바섬에서 돌아온 황제

1814년, 나폴레옹은 처음으로 권좌에서 쫓겨났어. 연합군이 파리를 점령했고, 그는 지중해의 작은 섬, 엘바섬으로 유배됐지. 하지만 거기서도 가만히 있던 사람이 아니었어. 섬을 직접 통치하고, 군대를 재편하고, 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지.

그러다 1815년 초, 유럽 열강들이 빈 회의에서 새로운 질서를 논의하는 사이, 나폴레옹은 기회를 잡았어. 몰래 엘바섬을 탈출해서 프랑스로 돌아온 거야. 그를 잡으러 온 왕정 군대는 도리어 환호하며 그에게 복종했고, 파리까지 무혈 입성에 성공했어.

이게 바로 역사에서 말하는 100일 통치의 시작이야. 다시 황제로 복귀한 나폴레옹은 유럽 전역을 충격에 빠뜨렸고, 영국,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는 즉시 제7차 대프랑스 동맹을 결성했지.

마지막 승부를 준비하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복귀가 단순한 반란이 아닌, 프랑스의 명예 회복이라고 믿었어. 빠르게 군대를 재편하고, 먼저 공격에 나섰지. 그의 전략은 이거였어. 적이 연합군으로 모이기 전에 각개격파하자.

그래서 그는 **프로이센군(블뤼허 장군)**과 **영국군(웰링턴 장군)**이 모이기 전, 벨기에에서 선제 공격을 했지. 계획은 나쁘지 않았어. 리니 전투에선 프로이센군을 물리쳤고, 상황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어.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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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털루, 모든 것을 건 마지막 전투

1815년 6월 18일, 벨기에의 작은 마을 워털루에서 전투가 벌어졌어. 나폴레옹의 병력은 약 7만, 웰링턴의 영국군은 약 6만, 그리고 멀리서 프로이센군 5만 명이 이동 중이었지.

처음엔 프랑스군이 우세했어. 특히 중기병 돌격은 강력했고, 영국군은 방어에 힘겨워했지. 하지만 날씨가 문제였어. 비 때문에 진흙이 질퍽해지면서 기동력이 떨어졌고, 대포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어.

가장 결정적인 순간, 나폴레옹은 근위대를 투입했는데, 이 카드마저 실패로 돌아갔어. 근위대가 밀리자 프랑스군 전체가 혼란에 빠졌고, 그 사이 프로이센군이 도착해서 프랑스군의 측면을 공격했지. 그렇게 나폴레옹의 마지막 승부는 처참하게 끝났어.

파리로 돌아왔지만, 더 이상 받아주는 곳은 없었어

워털루에서 패배한 뒤, 나폴레옹은 급히 파리로 돌아왔어. 하지만 국민도, 정치인도, 군대도 더 이상 그를 옹호하지 않았지. 이젠 모두 지쳐 있었어. 그는 스스로 두 번째 퇴위를 선언했고, 프랑스는 다시 왕정을 회복하게 돼.

도망칠 곳도, 숨을 곳도 없던 나폴레옹은 결국 영국 해군에게 항복했어. 자비를 구하려고 했지만, 영국은 그를 다시 유럽 근처로 돌려보낼 생각이 전혀 없었지. 그래서 그를 남대서양 한가운데의 외딴 섬, 세인트헬레나로 보내버렸어.

세인트헬레나에서의 마지막 날들

세인트헬레나는 정말 외진 곳이었어. 지중해의 엘바섬처럼 통치할 군대도 없고, 빠져나갈 기회도 없는 완전한 감옥 같은 섬이었지. 나폴레옹은 그곳에서 마치 자기 인생을 회상하듯, 회고록을 쓰며 조용히 살았어. 건강도 점점 나빠졌고, 결국 1821년, 51세의 나이로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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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무덤은 한동안 세인트헬레나에 있었지만, 나중에 프랑스로 옮겨졌고, 지금은 파리의 앵발리드에 묻혀 있어. 그곳은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가는 장소야. 그는 죽었지만, 그의 이름은 영원히 유럽 역사에 남게 된 거야.

영웅인가, 독재자인가

나폴레옹의 인생을 보면 진짜 극과 극이야. 군대와 실력만으로 황제에 오른 사람, 프랑스를 세계적인 강국으로 만든 사람, 동시에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킨 사람. 그래서 지금도 나폴레옹을 영웅으로 볼지, 독재자로 볼지 의견이 갈리지.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야. 워털루 전투는 한 시대의 끝이었고, 새로운 유럽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어. 프랑스 혁명이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인물이, 결국 같은 혁명의 회오리에 휩쓸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순간이기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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