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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이야기] 22. 나폴레옹의 등장 – 군인에서 황제로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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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이 끝나갈 무렵, 사람들은 지쳐 있었어. 자유도 좋고 평등도 중요하지만, 현실은 혼란 그 자체였지. 왕은 죽었고, 공포 정치도 끝났지만, 나라엔 안정이 없었어. 이때 조용히, 하지만 아주 빠르게 떠오른 인물이 있었지. 바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야.

코르시카 출신의 가난한 장교

나폴레옹은 프랑스 본토 출신이 아니었어. 지중해에 있는 작은 섬, 코르시카에서 태어났지. 원래 그 섬은 이탈리아령이었는데, 프랑스가 병합하면서 나폴레옹도 프랑스 국민이 된 거야. 그래서 프랑스 본토 사람들한테는 약간 촌놈 취급을 받았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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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엄청난 독서광이었고, 특히 역사랑 군사 전략에 관심이 많았어. 군사학교에 들어가서도 뛰어난 수재로 인정받았고, 결국 포병 장교로 임관하게 됐지.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그냥 조용한, 조금 특이한 젊은 군인이었어.

툴롱 전투에서 번뜩이다

그런데 1793년, 프랑스 남부의 도시 툴롱에서 왕당파 반란이 일어났어. 영국 해군까지 개입하는 복잡한 상황이었는데, 나폴레옹은 여기서 포병 배치를 기가 막히게 해내면서 도시 탈환에 큰 공을 세워. 이때부터 그의 이름이 군 내부에 알려지기 시작했지.

그 뒤로도 그는 빠르게 승진했어. 특히 이탈리아 원정에서 보여준 전투력은 정말 놀라웠어. 군대는 낡았고, 보급도 엉망이었지만, 나폴레옹은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고, 기민한 작전으로 오스트리아군을 박살냈지. 이때부터 사람들은 “나폴레옹은 진짜다” 하고 말하기 시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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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원정과 언론 플레이

1798년엔 이집트 원정도 했는데, 여기선 군사적으로는 사실 반쪽짜리 성공이었어. 넬슨 제독에게 해군이 궤멸당했거든. 그런데 놀랍게도, 프랑스 본토에선 사람들이 이걸 대단한 승리처럼 믿었어.

왜냐하면, 나폴레옹이 자신에게 유리한 뉴스만 퍼뜨렸거든. 언론을 장악하고, 자신을 영웅처럼 보이게 한 거지. 이때부터 그는 단순한 장군이 아니라, 정치적인 감각까지 갖춘 인물로 떠오르기 시작했어.

1799년 11월, 쿠데타로 권력을 잡다

그렇게 명성을 쌓던 나폴레옹은 결국 정치에 직접 손을 대기 시작했어. 1799년, 프랑스 정부는 완전히 무너져가고 있었고, 사람들은 강력한 리더를 원했지. 그 틈을 타서 나폴레옹은 ‘총재정부’를 무너뜨리는 쿠데타를 일으켰어. 이게 바로 브뤼메르 18일 쿠데타야.

그리고 그는 자신을 제1통령으로 선포했지. 사실상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된 거야. 왕은 아니었지만, 왕처럼 군림하는 통령이 된 셈이었지.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 황제가 되다

재밌는 건, 나폴레옹이 황제가 될 땐 형식적으로는 국민투표로 결정됐다는 거야. 사람들이 정말 좋아했거든. 혼란을 끝내고, 전쟁에서 이기고, 경제도 회복시키고… 실제로 그의 리더십은 다른 정치인들보다 월등했어.

그래서 1804년, 그는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돼.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열린 대관식에서, 교황이 아니라 나폴레옹 자신이 직접 왕관을 썼어. 이건 상징적인 장면이었어. 나는 신이 아닌, 내 힘으로 이 자리에 올랐다는 선언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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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에서 황제로, 혁명의 아이러니

생각해보면 이건 정말 아이러니였어. 프랑스 혁명은 왕을 몰아내고 자유와 평등을 외친 운동이었잖아. 그런데 결국, 다시 한 사람이 모든 권력을 쥐고 황제가 됐어. 물론 나폴레옹은 예전의 절대왕과는 달랐어. 그는 능력 중심 사회를 만들었고, 법전을 정리하고 행정 시스템을 정비했지. 하지만 동시에 언론을 통제하고, 반대자를 억압하기도 했어.

그는 혁명이 낳은 자식이었지만, 결국 혁명의 정신을 묻어버린 인물이기도 했어.

 

그렇게 나폴레옹은 프랑스를 다시 일으켰고, 이제는 유럽 전체를 향해 야망을 펼치기 시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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