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이 시작되고, 바스티유 감옥이 무너졌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진짜 자유로운 세상이 올 거라 믿었어. 하지만 혁명이 계속될수록, 자유는 점점 피와 공포로 얼룩지기 시작했지.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 인물이 있었어. 바로 로베스피에르, 자유를 가장 많이 외쳤지만, 동시에 수천 명을 단두대로 보낸 남자였어.
혁명은 점점 급진적으로 흘러갔어
왕과 왕비가 단두대에서 죽은 뒤, 프랑스는 공화국이 되었어. 그런데 나라 상황은 여전히 뒤죽박죽이었지. 외부에선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영국 같은 나라들이 혁명정부를 무너뜨리려고 달려들고 있었고, 내부에선 여전히 왕당파와 반란이 들끓고 있었어.
이 혼란을 정리하려고, 혁명 지도자들은 점점 더 강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어. 그 중에서도 가장 앞장섰던 인물이 로베스피에르였어.
로베스피에르는 원래 ‘양심의 사람’이었어
로베스피에르는 원래 법률가였어. 성실하고 정직하고, 늘 약자의 편에 서던 사람이었지.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부패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불렀어. 처음 혁명이 시작됐을 땐, 그는 늘 평등과 정의를 외쳤고, 특히 사형제 폐지 같은 이상적인 말을 많이 했어.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권력을 잡자마자 가장 먼저 사람들을 처형하기 시작한 거야. 그 이유는 간단했어. 반혁명 세력, 반대파, 의심되는 사람들까지 다 없애야 한다고 믿었던 거지.
공포 정치의 시작 – 혁명의 적은 모두 처형 대상
1793년, 로베스피에르가 이끄는 공안위원회는 프랑스를 완전히 장악했어. 그는 혁명을 지키기 위해선 공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지. 그래서 아주 작은 의심만 있어도, 재판도 제대로 없이 단두대에 세우는 일이 반복됐어.
이때가 바로 우리가 아는 공포 정치 시기야. 단 몇 달 사이에 1만 6천 명 넘게 처형당했어. 그중엔 진짜 반란을 꾀한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냥 왕정에 조금 호의적이거나, 말 한마디 잘못해서 걸린 사람들이었지.
심지어 혁명 동지였던 당통, 에베르 같은 사람들도 로베스피에르에 의해 처형당했어. 반대자뿐 아니라, 잠재적인 경쟁자까지 없애기 시작한 거지.
사람들은 점점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어
처음엔 로베스피에르가 정의를 위해 싸우는 영웅 같았어.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모두가 눈치를 보고 서로를 감시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어. 이웃이 나를 신고할까 봐, 친구가 나를 밀고할까 봐, 누구도 편히 말하지 못했지.
게다가 그는 종교까지 없애려고 했어. 기존의 가톨릭은 물론이고, 새로운 ‘이성의 숭배’라는 종교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통제하려 했지. 이제 사람들은 자유를 외치기보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침묵하게 됐어.
로베스피에르의 몰락 – 그도 결국 단두대 앞에 섰어
결국 사람들은 참지 못했어. 그가 누구를 다음 타깃으로 삼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공포는 더는 통하지 않았던 거야. 1794년 7월, 공포 정치에 질린 혁명 지도자들이 손을 잡았고, 로베스피에르를 체포했어.
그는 재판도 없이 바로 단두대로 끌려갔고, 그가 처형한 수천 명과 똑같이 목이 잘렸어. 그가 죽은 날, 파리 사람들은 광장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고 해. 그만큼 그의 공포 정치가 사람들을 짓눌렀던 거지.
자유에는 책임이 따랐어
로베스피에르는 처음엔 분명 진심이었어. 부패한 왕정, 억압받는 민중, 불공정한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사람이었지. 그런데 권력 앞에선 누구나 달라지는 법이었나 봐. 그가 만든 공포는 결국 자신도 집어삼켰어.
프랑스 사람들은 이 사건을 통해 깨달았지. 자유란 단지 왕을 없애는 게 아니라, 사람을 억누르지 않고도 공동체를 유지하는 법을 찾는 거라는 걸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