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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이야기] 17. 루이 15세의 프랑스 – 평화 속에서 키운 위기의 씨앗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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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4세가 죽고 나서 프랑스는 잠깐의 평화를 맞이했어. 전쟁과 궁전 건설로 나라 곳간은 비어 있었지만, 사람들은 오랜 전쟁의 피로에서 벗어나 숨 돌릴 여유를 좀 가졌지. 그런데 그 평화 속에서도 위기의 씨앗은 조용히 자라고 있었어. 바로 루이 15세 시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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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년 왕의 즉위 – 섭정 시대의 시작

루이 15세는 루이 14세의 증손자였어. 할아버지, 아버지가 다 일찍 죽는 바람에, 겨우 다섯 살 나이에 왕이 됐지. 그래서 처음엔 자기가 직접 나라를 다스릴 수 없었고, 오를레앙 공 필리프가 섭정을 맡았어.

이 시기에 프랑스는 표면적으로는 평화로워 보였지만, 사실 국가 재정은 이미 바닥을 쳤고, 궁궐 안에서는 귀족들이 다시 정치의 중심으로 기어들기 시작했어. 루이 14세 때 줄여놨던 귀족들의 힘이 점점 살아나고 있었던 거지.

2. 루이 15세의 통치 – 조용하지만 무기력한 국왕

루이 15세는 어린 시절부터 말이 없고 조용한 성격이었대. 성인이 되어 직접 정치를 하게 됐을 땐, 나라를 이끌고 바꾸는 데엔 그다지 의욕이 없었어. 전임 왕인 루이 14세는 ‘태양왕’이라 불릴 만큼 강한 리더였는데, 루이 15세는 눈치 보고 뒤로 빠지는 타입이었지.

그래서 정치는 자연스럽게 궁정 내 측근들과 정부 관료들 손에 넘어갔어. 특히 총신(寵臣)인 푸아송 부인, 우리가 잘 아는 마담 드 퐁파두르가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어. 그녀는 문화와 예술을 진흥시켰지만, 동시에 국민들 눈에는 왕이 여인에게 놀아난다는 이미지도 강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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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재정난과 특권층 – 부자들은 세금을 내지 않았어

루이 15세 시기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재정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었다는 거야. 나라 곳간은 텅텅 비었는데, 귀족들과 성직자들은 세금을 거의 내지 않았거든. 돈은 필요한데 세금을 낼 사람은 없으니, 결국 평민들한테만 부담이 몰렸지.

게다가 이 시기엔 금융 사기 사건도 있었어. 바로 ‘로(John Law)의 종이화폐 버블’ 사건인데, 사람들이 주식과 화폐를 믿고 몰려들었다가 결국 거품이 터지면서 큰 손실을 봤지. 이 일로 왕실의 신뢰는 더 떨어졌어.

4. 끊이지 않는 전쟁 – 평화 속의 전쟁이라니?

루이 15세는 조용한 이미지와 달리, 생각보다 많은 전쟁을 했어.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1740~1748)**이나 7년 전쟁(1756~1763) 같은 굵직한 전쟁에 참여했지. 문제는 이 전쟁들이 명확한 이득도 없고, 돈만 잔뜩 썼다는 거야.

특히 7년 전쟁에서는 북미 식민지 대부분을 영국에게 빼앗기고 말았어. 캐나다와 루이지애나 동쪽을 내줘야 했고, 프랑스 해군도 크게 약해졌지. 국민들 입장에서는 “도대체 왜 싸운 거야?” 하는 의문만 남았어. 왕에 대한 불만도 점점 쌓여갔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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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불만의 축적 – 프랑스 혁명의 서막

겉으로는 아직 왕정이 건재해 보였지만, 루이 15세 말기의 프랑스는 이미 폭발 직전의 압력솥이었어. 재정은 파탄 직전, 귀족들은 특권 유지, 평민들은 가난에 시달리고, 왕은 무기력했지. 게다가 계몽사상가들이 “왕의 권력은 신이 준 게 아니라 인간이 준 거다”라는 생각을 퍼뜨리고 있었어.

루이 15세는 “내가 죽고 나면 홍수가 닥칠 것이다(Après moi, le déluge)”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그 말은 진짜였어. 그의 손자 루이 16세 시절에, 결국 그 홍수 같은 혁명이 터져버렸거든.

 

루이 15세의 시대는 어찌 보면 조용한 시대였지만, 그 안에 위기의 씨앗들이 조용히, 깊숙이 자라던 시기였어. 겉으론 예술과 건축이 화려하게 발전했지만, 안으로는 나라가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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