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오스만 제국은 수도도 차지했고,
명실상부한 초강대국의 길로 나아가게 돼.
그리고 그 전성기를 이끈 인물이 바로
술레이만 대제(Süleyman the Magnificent)야.
오스만 제국의 절정,
가장 넓은 영토, 가장 강한 군대,
가장 찬란한 문화가 꽃피운 시대,
바로 술레이만 대제(Süleyman the Magnificent)
의 시대에 도착했어.
이 사람은 단순한 정복자가 아니야.
그는 칼로도, 법으로도, 예술로도
제국을 빛나게 한 인물이었고,
그의 시대는 오스만 제국이
진짜 ‘세계의 제국’이 되는 순간이었지.
유럽과 중동, 북아프리카를 삼킨 위대한 정복자
제국의 왕좌에 오르다
1520년, 젊은 술탄 술레이만 1세가 즉위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가 별 특징 없는 왕이 될 줄 알았어.
하지만 그는 곧바로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기 시작하지.
그는 전쟁터에서도 직접 칼을 들었고,
궁전 안에선 법을 다듬고 체계를 만들었으며,
예술과 건축에 대한 안목도 뛰어났어.
그런 그에게 유럽은
‘The Magnificent(위대한 자)’,
이슬람 세계는 ‘칸우니(Lawgiver, 입법자)’라는
별명을 붙여줬지.
정복의 발걸음 – 유럽이 흔들리다
술레이만은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았어.
아니, 오히려 그는 전쟁을 통해
제국의 위상을 세웠지.
헝가리(모하치 전투, 1526)를 박살내고
오스트리아 빈까지 진격했으며
발칸, 동유럽 대부분을 손에 넣었고
중동에서는 사파비 이란과 싸워
메소포타미아와 이라크를 확보했어.
이집트·리비아·알제리 등 북아프리카도
그의 통치 아래 들어왔지.
이때 오스만 제국은
세 대륙을 아우르는 초거대 제국이 되었어.
유럽은 공포에 떨었고,
이슬람 세계는 자부심에 넘쳤지.
바다에서도 거대한 존재로 – 지중해의 제왕
오스만은 단지 육군만 강했던 게 아니야.
지중해 해군력도 세계 최강급이었어.
해적 출신 장군 바르바로사(Barbarossa)가
이끄는 오스만 함대는
스페인·이탈리아 해안을 위협했고,
지중해, 홍해, 심지어 인도양까지
오스만 해군이 모습을 드러냈지.
'육지에선 술레이만, 바다에선 바르바로사'
라는 말이 유럽에 돌았을 정도야.
법과 제도의 정비 – 무력을 넘어선 리더십
술레이만은 단지 정복만 하는 왕이 아니었어.
그는 ‘입법자’로서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했지.
형벌, 세금, 행정, 재판 절차 등을 체계화하고,
지방 통치자들에게 책임과 권한을 명확히 했으며
이슬람법(샤리아)과 관습법을 융합한
‘술레이만 법전’을 완성했어.
이 법은 술레이만 사후에도 수백 년간
오스만 사회를 움직이는 기본 틀이 되었어.
예술과 건축 – 문화도 정복하다
술레이만 시대는
오스만 예술과 건축이 절정에 이른 시기야.
건축가 시난(Mimar Sinan)이
술탄아흐메트 모스크, 셀리미예 모스크 등
걸작을 남겼고 도자기, 직물, 세공품이
유럽 상류층의 필수품이 되었지.
궁중 시가, 음악, 서예 등도 번성했고,
술레이만 본인도 시인으로 활동했을 정도야.
단순히 칼로 제국을 지배한 게 아니라,
문화로 세계를 매혹시킨 시대였어.
하지만 그림자도 없지 않았어
술레이만은 말년에
후계자 문제로 큰 갈등을 겪었어.
총애하던 후궁 훌렘 술탄(Hürrem Sultan)의
개입으로 아들들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왕위 다툼이 벌어졌고, 그중 유능했던 아들
무스타파 왕자가 억울하게 처형되기도 했지.
이는 훗날 오스만 궁정의 내부 정쟁과
하렘 정치의 시작으로 이어졌어.
하지만 술레이만 대제의 시대는
오스만 제국이 가장 크고, 가장 강하고,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이었어.
그는 전쟁의 승리자, 법의 정비자,
문화의 후원자였고,
그의 시대는 오스만의 태양이 가장 높이
떴던 순간으로 기억돼.
하지만 그 태양이 가장 높이 떴다는 건,
이제부터는 서서히 지기 시작한다는
예고이기도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