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민국과 공산당이 격돌하게 된
국공내전(國共內戰),
그리고 그 끝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즉 오늘날 현대 중국의 출발점까지
이번엔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두 개의 중국, 두 개의 꿈이 충돌한 시대야.
1. 국민당과 공산당, 처음엔 손을 잡았던 사이
1920년대 초반,
중국은 군벌들이 들끓고 있었고,
나라는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어.
이때 쑨원(손문)은
“우리가 단결해서 중국을 통일해야 한다”며
공산당과 손을 잡아.
이걸 제1차 국공합작이라고 불러.
당시 국민당은 힘이 있었지만,
공산당은 아직 신생 조직이었고,
소련의 도움을 받으면서 성장 중이었지.
2. 쑨원의 죽음, 그리고 장제스의 등장
1925년, 쑨원이 병으로 죽자
국민당의 새로운 지도자로
장제스(장개석)가 떠올랐어.
장제스는 군사적 능력도 있었고,
공산당은 위험하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1927년,
장제스는 상하이에서 공산당원들을 대거 숙청해.
이게 바로 ‘상하이 쿠데타’,
이 사건을 계기로 국공내전이 본격 시작돼.
3. 장제스의 국민당 vs 마오의 공산당 – 본격 내전
그 뒤로 중국은 완전히 둘로 갈라진 채
내전에 빠졌어.
국민당은 남쪽에서 출발해 점차 북벌을 하며
중국 대부분을 장악했어.
하지만 공산당은 지방 농민들과 손을 잡고
‘유격전’, ‘게릴라전’을 벌이면서 뿌리를 내려갔지.
1934년에는 ‘장정(長征)’이라는
2만5천 리(약 1만 2천 km)를 걸으며
중국 대륙을 횡단하는 전설 같은
후퇴 작전도 감행했어.
이 장정 속에서 마오쩌둥(毛澤東)은
공산당의 진정한 지도자로 자리 잡게 돼.
4. 일본의 침략, 그리고 잠깐의 협력
1937년, 일본이 본격적으로
중국 침략(중일전쟁)을 시작하자
국민당과 공산당은 다시 손을 잡아.
이게 제2차 국공합작이야.
공동으로 일본에 맞서 싸우자고 한 거지.
하지만 두 세력은 속으로는 여전히 서로 견제하고 있었어.
공산당은 전쟁 속에서도 농민 기반 확대에 집중했고,
국민당은 도시 중심 통치에 의존했지.
5. 일본 패망 이후 – 전면전 돌입
1945년, 일본이 패망하면서
중국 본토에서 힘의 공백이 생겼어.
이제 국민당과 공산당은
진짜 중국의 주인이 되기 위해 전면전을 벌이게 돼.
전쟁은 1946년부터 본격화됐고,
공산당은 북중국과 농민층을 기반으로
세력을 확장했어.
반면 국민당은 부정부패, 경제 실패,
민심 이탈로 점점 무너졌지.
결국 1949년, 공산당은 베이징을 점령했고,
장제스는 패배한 채 대만으로 도망쳐.
6.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은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이렇게 선언해.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었다!”
드디어 공산당이 세운 현대 중국,
‘중화인민공화국’이 공식 출범하게 된 거야.
7. 그리고 두 개의 중국 – 대륙과 대만
장제스는 국민당 세력을 이끌고 대만으로 넘어가,
거기서 중화민국 정부를 유지했어.
그래서 지금까지도
하나는 ‘중화인민공화국(중국 본토)’,
하나는 ‘중화민국(대만)’
→ 두 개의 중국이 나란히 존재하게 된 거지.

청나라가 무너진 뒤
중국은 공화정, 군벌 시대, 그리고
내전이라는 험난한 길을 걸었고,
결국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새로운 체제로 탄생하게 됐어.
하지만 그 과정에서 두 개의 중국이 생겼고,
그건 지금까지도 외교·안보 문제의 뿌리로 남아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