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가 무너지고 난 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淸朝)가
중국 대륙을 지배하기 시작했어.
그 초기에 나타난 두 명의 황제,
강희제(康熙帝)와 건륭제(乾隆帝)는
청나라를 그야말로 중국 역사에서 가장 넓고,
안정적이고, 찬란한 제국으로
만들었던 인물들이야.
청나라, 한족의 땅을 다스리게 되다
청나라는 원래 여진족,
그러니까 북방의 유목민족이었어.
명나라가 무너진 혼란한 틈을 타서
한족의 땅에 들어와 중국 전체를 차지하게 된 거지.
근데 문제는, 만주족은 소수고,
한족은 다수라는 거야.
전통도, 말도, 문화도 달랐기 때문에
이걸 억지로 다스리려 하면 당연히 반발이 심했지.
그래서 청나라 황제들은 힘만 쓰는 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아주 똑똑한 전략을 썼어.
그 시작이 바로 강희제였지.
소년 황제, 천하를 품다 – 강희제
강희제는 8살에 황제가 되었어.
처음엔 섭정 대신들이 정사를 돌봤지만,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관찰력이 뛰어난 아이였지.
그는 14살이 되던 해,
자신을 무시하던 섭정 세력을 직접 숙청하고,
본격적으로 스스로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했어.
그 이후로 61년간 황제 자리에 앉아 있었어.
중국 황제들 중 가장 오래 통치한 황제 중 한 명이지.
강희제가 한 일들
1. 반란 진압과 안정을 세우다
초기 청나라엔 아직도 명나라를 따르던
반란 세력들이 있었어.
그걸 대표적으로 ‘삼번의 난’이라고 해.
이건 남쪽에 주둔하던 한족 장수들이
일으킨 대규모 반란이었지.
강희제는 몇 년에 걸쳐 이걸 진압했고,
그 이후로 청나라의 통치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 됐어.
2. 외적을 정리하다
북쪽의 몽골과 러시아까지 강희제는
외교와 무력으로 정리했어.
러시아와는 네르친스크 조약이라는 조약을 맺어서
청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서양 국가와의 조약도 체결했지.
3. 학문과 문화 부흥
한족의 마음을 얻기 위해
유교와 학문을 중시했고,
백성들과 학자들을 존중했어.
덕분에 많은 한족 백성들도 강희제를 따르기 시작했지.
청나라의 정점을 찍은 황제 – 건륭제
강희제가 죽은 뒤, 그의 손자인
건륭제가 뒤를 이었어.
건륭제는 할아버지를 본받아
아주 꼼꼼하고 세련된 통치를 했어.
건륭제가 이룬 것들
1. 영토의 확장
건륭제 때 청나라는 영토가
역대 중국 왕조 중 가장 넓었어.
신장, 티베트, 몽골까지 다 포괄하면서
지금 우리가 아는 '중국 지도'가
이때쯤 완성됐다고 보면 돼.
2. 문화 예술의 황금기
건륭제는 예술과 서예, 고문서 수집에
엄청난 관심이 있었어.
그가 만든 ‘사고전서’는 중국 역사상
가장 방대한 책 모음집이야.
수많은 책을 수집하고 편찬하게 해서,
청나라를 문화적으로도 풍요롭게 만들었지.
3. 아버지를 위하는 마음
건륭제는 사실 85살 넘게까지 살았는데,
자신이 할아버지 강희제보다
오래 재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60년 딱 채우고 아들한테
황제 자리를 물려줬어.
되게 효심 깊은 황제였던 거지.
완벽해 보였지만, 어두운 그림자도 있었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엔 완벽했던 이 시기에도
벌써부터 안에서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어.
관리들은 점점 더 부패했고,
은으로 세금 내는 제도는
지방 백성들에게 너무 가혹했고,
군사력은 넓은 영토에 비해 얇아졌고,
서양과의 교류가 늘면서
청나라의 세계관은 점점 낡아져갔지.
건륭제 이후부터는 더 이상
유능한 황제가 나오지 않았고,
이후 청나라는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게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