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는 청나라가 서양과 맺은
첫 번째 조약,
다른 하나는 중국 지식과 문화를 모아
정리한 거대한 책에 관한 이야기야.
이 두 가지는 청나라가 외적으로는 국경을 다지고,
내적으로는 문화를 정리하고
권위를 세우려 했던 노력이었어.
1. 강희제의 외교 승부수 – 네르친스크 조약
17세기 중반, 청나라는 북쪽 국경에서
낯선 적을 마주하게 돼.
그 상대는 다름 아닌 러시아 제국이었어.
러시아는 시베리아를 정복하면서 점점
동쪽으로 밀고 들어오고 있었고,
결국 아무르강 근처에서 청나라와 충돌하게 됐지.
특히 ‘알바진’이라는 곳에서
둘이 무력 충돌까지 벌이게 됐어.
청나라 입장에선 이제 막 중국 땅을
차지하고 안정시키는 중이었고,
러시아도 동쪽까지 완전히
장악할 힘은 없었기 때문에
서로 전면전은 피하고 외교로 풀기로 해.
그래서 1689년,
청나라의 강희제와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는
‘네르친스크 조약(尼布楚条约)’이라는 협정을 맺어.
어떤 조약이었을까?
청나라와 러시아가 서로 국경선을 명확하게 정함.
(아무르강 일대를 청나라 영토로 인정)
양국의 상인과 사절단이 국경을 넘어 왕래할 수 있게 함.
공식 조약으로는 라틴어를 사용.
왜냐면 둘 다 상대 언어를 몰랐고,
중간에 예수회 선교사들이 통역해줬거든.
왜 이 조약이 중요했을까?
이 조약은 청나라가 서양 국가와 맺은
첫 번째 조약이야.
게다가 서로 ‘대등한 국가’로서 외교를 한 것도
당시로선 이례적인 일이었지.
청나라는 이걸 통해 북쪽 국경을 안정시켰고,
러시아도 자원 탐사와 무역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어.
한마디로, 둘 다 전쟁 대신 협상을 선택해서
공존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딘 거야.
2. 건륭제의 문화 야심작 – 사고전서
이번엔 건륭제의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건륭제는 그 자신이 글을 잘 쓰고
문화를 엄청 사랑했던 황제였어.
서예도 잘했고, 고문서나 예술품도
수집하는 걸 좋아했지.
그러다 어느 날, 그는 야심찬 생각을 하게 돼.
“지금까지 중국에 존재했던
모든 책과 지식을 한데 모아보자.”
이건 단순한 수집이 아니라
지식과 문화로 제국을 통치하겠다는
정치적인 선언이었어.
그래서 만든 게 바로 건륭제의 지식 황제 프로젝트,
‘사고전서(四庫全書)’라는 대사업이야.
어떤 책이었을까?
사고전서는 네 가지 범주로 나뉘어 있어.
- 경(經) – 유교 경전과 철학
- 사(史) – 역사서
- 자(子) – 잡학, 과학, 의학, 법률
- 집(集) – 문학, 시, 산문
그래서 이름도 사고(四庫),
즉 네 개의 장서 창고란 뜻이야.
이 작업을 위해 전국의 학자들을 모았고,
이미 있던 책들을 검토하고, 분류하고,
때로는 수정하기도 했어.
전국 각지에서 책을 헌납하라고 명령까지 내렸지.
최종적으로는 3,400여 종의 책을 모아서,
7부 정도를 필사해서 황궁과 주요 도시에 보관했어.
문화적 업적? 아니면 검열의 시작?
사고전서는 단순히 책을 모은 게 아니라,
청나라가 어떤 책은 보존하고 어떤 책은
없앨지 결정한 기준이 되기도 했어.
황제를 비판하거나 만주족을 비난하는 내용은
아예 삭제되거나 금서로 지정됐지.
그러니까 이건 지식의 도서관이자,
지식 통제의 도구이기도 했던 거야.
무력과 문화, 두 개의 칼날
강희제는 외교와 무력으로
국경을 안정시켰고,
건륭제는 지식과 문화로
나라를 통합하려고 했어.
둘 다 각자 방식으로 제국의 통치를 다듬었고,
청나라는 이 시기에 가장 넓고
찬란한 나라로 빛났지.
하지만…
그 안에 감춰진 문제들은 점점 쌓여갔고,
이후 청나라는 외세에 휘둘리면서 몰락의 길로 향하게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