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몬 시대의 숲과 바다를 지나 논밭이 펼쳐지고,
마을마다 우두머리가 생기는 시대,
바로 '야요이 시대(弥生時代)'로 들어가게 돼.
이건 단순히 농사를 짓기 시작한 시대가 아니야.
일본이라는 나라의 형태, 권력, 계급, 외부와의 연결이
처음으로 진짜 모습을 드러낸 시기지.
시작은 조용했지만, 변화는 거셌어
기원전 300년쯤, 일본 땅에는 조용히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어.
낯선 토기, 빛나는 금속 도구, 논과 물길이 있는 마을
이건 조몬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삶의 방식이었지.
사람들은 이걸 '야요이 문화'라고 불렀어.
도쿄 근처 ‘야요이’라는 마을에서 처음 발견돼서
붙은 이름이야.
벼농사의 시작 – 물이 곧 권력이 된 시대
가장 큰 변화는 벼농사였어. 벼는 조몬 시대의
도토리, 조개보다 훨씬 안정적인 식량이었지.
하지만 그만큼 손도 많이 가고, 물도 필요했고,
사람들끼리 협력도 해야 했어.
그래서 어떻게 됐냐면, 물을 지배하는 자, 곡식을
저장할 수 있는 자, 사람을 부릴 수 있는 자,
이런 이들이 마을을 이끌게 되고, 계급과 권력의
씨앗이 생겨난 거야.
철기와 청동기의 도착 – 무기와 제사의 이중적 의미
야요이 시대엔 철기와 청동기도 들어왔어.
철기는 주로 도구와 무기, 청동기는 종교적 제사에
사용됐어.
특히 도타쿠(銅鐸)라고 하는 청동 방울처럼 생긴
제사 도구는 이 시대 사람들의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을 연결하려는 상징물이었지.
무기를 든 남자들과 기도를 올리는 무녀들, 이 둘이
함께 움직이던 시대, 즉 권력과 종교가 처음으로
손을 잡은 시대였어.
사회는 점점 복잡해졌어
벼농사로 먹을 게 많아지자 사람들은 점점 모여
살았고, 그 속에 지배자와 피지배자, 부유한 집과
가난한 집이 생기기 시작했지.
무덤에서도 그런 흔적이 보여. 어떤 무덤은 커다란
돌로 둘러싸여 있고, 어떤 무덤은 작고 조촐해.
이건 단순한 묘지가 아니라 누가 더 중요한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 된 거야.
야요이 시대의 국제 관계 – 외부와 닿기 시작한 일본
이 시기 일본은 한반도 남부, 특히 가야, 백제와
활발히 교류했어. 벼농사와 금속기술도 한반도에서
전해졌다는 게 정설이야.
또 중국 한나라에서는 “왜(倭)”라는 이름으로 일본을
기록하기 시작했어.
이게 일본 역사에 처음 등장한 ‘외부의 시선’이었지.
이건 일본이 이제 단절된 섬이 아니라 바다 건너
나라들과 얽히기 시작한 시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