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일본은 수십 년간의 전쟁과 혼란을 끝내고,
드디어 하나의 나라로 다시 모이려는 순간을 맞이해.
그 중심에는 바로 세 명의 남자,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있었어.
이 세 사람은 역사 교과서에서는
'일본 통일의 3대장군'으로 나오고,
일본 사람들은 이렇게도 말해.
“새가 울지 않으면, 노부나가는 죽여버리고,
히데요시는 달래서 울리고,
이에야스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
성격도, 방법도 달랐지만 셋 다 진짜 통일을
이루려 했던 시대의 거인들이었지.
1. 오다 노부나가 – 혁명처럼 밀어붙인 사나이
오다 노부나가는 혼란의 한가운데였던 '오와리
(지금의 아이치현)'의 다이묘였어.
그는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총(鉄砲)이라는
신무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강력한
전투 스타일을 보여줬지.
특히 '나가시노 전투'에선 총을 부대 단위로
배치하고, 기병대의 돌진을 탄막으로 막는 신개념
전투 방식을 보여줬어.
그가 한 일 중 가장 상징적인 건 나라의 종교 권력을
정리한 것이야. 수도권을 장악하고,
혼노지 사변으로 큰 불교 세력을 토벌했지.
혼노지의 변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혼노지의 변(일본어: 本能寺の変)은 1582년 음력 6월 2일(6월 21일) 혼노지에서 발생한 센고쿠 사(戰國史)의 분수령이 된 사건을 말한다. 아케치 미쓰히데의 모반
ko.wikipedia.org
출처 위키백과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자기 부하 아케치
미츠히데의 배신으로 교토의 혼노지에서
죽음을 맞아.
일본 전국을 통일하기 직전, 미완의 천재로 퇴장한
인물이었어.
2. 도요토미 히데요시 – 밑바닥에서 최고까지 오른 남자
노부나가의 죽음 이후, 그의 가신 중 한 명이었던
히데요시는 놀라운 속도로 권력을 장악했어.
원래는 농민 출신으로, 말단 병사에서 출발한
입지전적인 인물이야.
히데요시는 전국의 다이묘들을 제압하고,
'도수령(刀狩令)'으로 농민들의 무장을 금지하고,
신분제를 고정해서 나라를 안정시키려 했지.
그의 통치는 전쟁으로 무너진 땅을 정리하고
재건하는 행정 중심의 정치였어.
하지만 그의 가장 큰 실수는 바로 조선 침략
(임진왜란)이야. “중국을 치겠다”며, 일본군을 대거
조선에 보내고, 결국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도
실패했지.
히데요시가 죽은 뒤, 정권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어린 아들 히데요리를 둘러싼 권력 다툼이
벌어지게 돼.
3. 도쿠가와 이에야스 – 기다림의 승자, 진짜 통일자
히데요시의 사후, 정권을 노리는 여러 세력들
사이에서 이에야스는 끝까지 침착하게 움직였어.
그리고 1600년, 일본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전투 중
하나인 ‘세키가하라 전투(関ヶ原の戦い)’에서
승리하면서 사실상 일본의 실권을 쥐게 돼.
이후 그는 1603년, 정식으로 쇼군에 임명되어
‘에도 막부’를 열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법과 제도로 나라를 다듬고,
외부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260년 넘는 평화의 시대
(에도 시대)를 여는 기반을 마련해.
세 사람, 세 방식
노부나가는 힘과 혁신으로 길을 열었고,
히데요시는 행정과 조직으로 나라를 정리했고,
일본 전국시대를 실질적으로 통일한 인물이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에야스는 인내와 제도로
나라를 통일했지.
이 셋이 이어져 전국시대 100년의 전쟁을
마무리짓고,
일본은 드디어 통일된 안정 국가로 나아가게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