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말레이시아(말라야)와 싱가포르가
어떻게 일본의 손에 넘어갔는지에 대한 거야.
이건 단순한 점령이 아니었고,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 불리던 영국이
치명적인 패배를 당한 사건이기도 했어.
시간은 1941년 말,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하고
태평양 전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점이야.

같은 시기, 일본은 말라야 반도를 따라
남하 작전을 펼치기 시작했지.
이 작전의 목표는 명확했어.
주석과 고무가 풍부한 말레이시아와
해상 무역 요충지인 싱가포르를 차지하는 것.

당시 영국은 싱가포르를 “동양의 지브롤터”라고
부를 정도로 강력한 요새라고 생각했지만,
일본은 놀랍게도 육지에서 공격하는 방법을 택했어.
영국은 일본이 바다로만 공격해 올 거라고
생각하고 북쪽 방어를 소홀히 했거든.
결국 일본군은 자전거를 타고
밀림을 뚫고 빠르게 남하했고,
연합군은 제대로 된 저항도 못 한 채 후퇴했지.

이 와중에 말라야 내 민족 간 분열,
특히 말레이인, 중국계, 인도계 간 긴장도
일본이 공략하는 데에 유리하게 작용했어.
그리고 1942년 2월, 싱가포르는 결국 일본에 항복해.
영국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항복 중 하나로 평가돼.
처칠도 이걸 두고 "영국 군사 역사상 최악의 재앙"
이라고 했을 정도였지.
일본의 점령 아래,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는
엄청난 고통을 겪어.

특히 중국계 주민들은 일본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집단 학살과 고문을 당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강제노역, 공출, 강제 징집에 시달렸어.
이 시기 무장 독립운동 조직들,
특히 말라야 공산당 게릴라가
정글 속에서 일본에 저항하는 싸움을 시작하게 돼.
이 점령은 일본이 동남아시아 전역을 집어삼키던
전성기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식민지 주민들이 겪은 폭력과 공포를
그대로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해.
결국 일본이 패전하고 영국이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의
민족주의와 독립운동은 이 시기에
더 강하게 불붙게 돼.
이게 훗날 말레이시아 독립(1957)과
싱가포르 독립(1965)으로 이어지는 거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