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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식민지] 2. 정한론과 조선 침략론 – 대륙 진출의 첫 발상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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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폭풍처럼

근대화를 밀어붙이고 있었어.


하지만 이 변화의 속도만큼이나,

내부엔 야심찬 목소리들도 커지고 있었지.

그중 가장 거센 건 바로 ‘정한론’(征韓論) 이었어.


말 그대로 “조선을 정복하자”는 주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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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넘보는 시선, 왜 시작됐을까?

당시 일본은 강대국이 되려면 반드시

식민지가 필요하다고 믿고 있었어.


서양 열강들이 아시아 곳곳을 차지하고 있는 걸 보면서,
“우리도 대륙으로 진출하지 않으면 언젠가 먹힌다”는

불안감이 컸던 거야.

 

그런데 딱 눈에 들어온 나라가 있었어. 바로 조선이었지.

 

조선은 오랫동안 명나라–청나라와 조공 관계를

유지하며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고,
일본 입장에서 보면 “답답하고 뒤처진 나라”

처럼 보였던 거야.

그러다 보니, 일본 내부에선 “먼저 조선을 열고,

그 다음엔 중국과 러시아로 가자”는
대륙 침략의 시나리오가 점점 구체화되기 시작했지.

사이고 다카모리와 정한론자들의 주장

정한론의 중심엔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

라는 인물이 있었어.


그는 메이지 유신의 주역 중 하나였고,

강한 군국주의적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지.

 

그가 했던 주장은 꽤 극단적이었어.

  • “조선을 침략해야 군사력도 단련되고, 백성들의 불만도 줄일 수 있다.”
  • “서양보다 먼저 아시아를 장악해야 일본이 주도권을 쥔다.”

게다가 그는 자기 자신을 조선에 ‘대사’로

보내달라고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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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거기서 일부러 조선과 충돌을 일으켜,

전쟁의 명분을 만들자는 식이었지.

 

이건 거의 전쟁을 일부러 유도하자는 말이었어.

메이지 정부의 딜레마

이 시점에서 메이지 정부 내부는 크게 나뉘었어.

  • 한쪽은 정한론을 밀어붙이자는 강경파
  • 다른 쪽은 아직 일본 내부 정비가 먼저다라는 신중파

결국 신중파인 오쿠보 도시미치 등이

승리하게 되면서, 정한론은 1873년에 일단 보류되긴 했어.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일본이 조선을 단순히 이웃으로 본 게 아니라
“대륙으로 가는 문”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
이야.

이때부터 일본은 기회를 엿보다가,

1875년 운요호 사건,
그리고 1876년 강화도 조약 같은

실제 침략으로 이어지게 되지.

정한론은 침략의 ‘사전 예고’였어

결국 정한론은

실제로는 시행되지 않은 계획이었지만,
그 정신은 일본 전체에 깊게 뿌리내렸어.

  • 조선은 약하고 문을 닫고 있으니 열어야 한다
  • 열지 않으면 무력으로 열면 된다
  • 조선을 차지하면 대륙 진출이 가능하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 정한론을 넘어서,

일본 제국주의의 기본 방향이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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