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가 변할 때는,
보통 아주 큰 충격이 먼저 오잖아?
일본에게 그 충격은 바로 서양의 문 열어라 압박,
특히 미국의 페리 제독이 함대를 이끌고 에도만에
들어왔을 때부터 시작됐어.
그게 1853년의 일이야.
당시 일본은 에도 막부 체제 아래 거의 200년 넘게
문을 걸어잠그고 있었지.
그런데 갑자기 “문 열어라, 아니면 쳐들어간다”
식의 서양식 협박이 닥쳐오니까 혼란이 컸던 거야.
그리고 이 혼란의 끝에는, 에도 막부가 무너지고,
천황이 다시 앞에 나서는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라는 대격변이 일어나게 돼.
천황이 돌아오다 – 정치의 대전환
1868년, 일본은 에도 막부를 무너뜨리고 ‘왕정복고’,
그러니까 천황 중심의 새 정부를 만든다고 선언했어.
메이지 유신이란 이름도 이때 생긴 거지.
천황은 “나는 신성하고, 나라의 중심이다”라는 걸
내세우며 권력을 다시 가져오게 돼.
하지만 이건 단순히 정치 체제가 바뀐 게 아니었어.
메이지 정부는 국가 전체를 새로 설계하는
일대 프로젝트를 시작했지.
서양을 배우자! – 근대화 돌입
“우리가 이대로 가면 서양에 먹힌다!”
이 위기의식 때문에 메이지 정부는
서양을 빠르게 배워서 따라잡자는 목표를 세워.
그래서 한 일들이 정말 많아.
- 신분제 폐지: 사무라이 계급도 일반인과 같아짐
- 징병제 도입: 근대식 국민 군대 창설
- 서양식 학교 교육: 초등학교 의무교육 시작
- 산업화 추진: 철도, 공장, 은행 설립
- 헌법 제정과 의회 설치: 입헌군주제 흉내내기
그리고 이 모든 변화는 국가가 중심이 돼서
밀어붙이는 방식, 즉 ‘근대국가 건설’의 모델이었어.
근대화와 함께 싹튼 팽창주의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게 하나 있어.
일본은 단순히 근대화만 한 게 아니야.
‘우리도 제국이 돼야 한다’는 야심도
이 시기에 함께 자라기 시작했거든.
“서양은 힘이 있으니까 식민지를 갖고 있다.
우리도 약한 나라를 지배해야 강대국이 된다.”
이런 식의 논리가 점점 사회 전체에 퍼지게 돼.
특히 ‘정한론’, 즉 조선을 정복하자는 주장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야.
조선을 먼저 차지해서 대륙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말이 진지하게 정부 내에서도 오르내렸지.
메이지 유신은 결국 ‘출발점’이었어
사람들은 종종 메이지 유신을
“일본의 근대화 혁명”이라고 얘기해.
맞는 말이야.
하지만 동시에 이 유신은
일본 제국주의의 출발점이기도 해.
이후 일본은 근대화를 기반으로 조선에 접근하고
청나라와 러시아와 전쟁하고
아시아 각국을 하나하나 식민지화하며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꿈꾸게 되는 길로
나아가게 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