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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이야기-파키스탄] 종교로 나뉜 대지,파키스탄의 탄생과 시작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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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단순히 한 나라가 생긴 얘기가 아니라,
종교와 정치, 분노와 희망이 섞여

만들어진 ‘분단의 탄생’이야.

1. 왜 굳이 나라를 나눠야 했을까?

1947년, 인도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어.
하지만 함께 싸웠던 힌두교도와 무슬림은
독립의 순간,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돼.

이유는 간단하면서도 복잡했지.

무슬림들은 인도 땅에서 소수 종교였고,

힌두교 중심의 인도 정부가 자신들의 신앙과

문화를 보호해주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컸어.

 

그래서 “우리를 위한 나라, 무슬림의 국가”,
파키스탄(Pakistan)이 탄생한 거야.

 

이름 ‘Pakistan’은 '순수한 땅(Pak)'이라는 뜻에서 비롯됐고,

펀자브, 아프가니스탄, 카슈미르, 신드,

발루치스탄 지역 이름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들었어.

2. 두 조각 난 파키스탄 – 서쪽과 동쪽

파키스탄은 처음부터 특이했어.
서쪽 파키스탄(현재의 파키스탄)과
동쪽 파키스탄(현재의 방글라데시)이
인도라는 땅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었거든.

 

서쪽은 우르두어, 펀자브어, 파슈토어 사용

동쪽은 벵골어 사용 (문화·언어 차이 매우 큼)

 

이건 나중에 큰 갈등과 비극의 씨앗이 돼.

3. 혼돈의 출발 – 독립과 대이주, 피의 분단

1947년 8월 14일, 파키스탄은

공식적으로 독립 선언을 해.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인도도 독립하면서

전대미문의 이주 사태가 벌어져.

 

무슬림 수백만 명이 파키스탄으로 이동하고 

힌두교도와 시크교도 수백만 명이 인도로 탈출했어.

이 과정에서 종교 갈등이 폭발,
100만 명 이상이 학살당하거나 실종되고,
수천만 명이 고향을 버려야 했지.

 

이 비극은 지금도 양국 간의 불신의 뿌리로 남아 있어.

4. 초대 지도자 – ‘카이다이아잠’ 무함마드 알리 진나

파키스탄의 초대 지도자는
무함마드 알리 진나(Muhammad Ali Jinnah)였어.


그는 무슬림 리그를 이끌며
파키스탄 독립을 이끈 핵심 인물이었지.

진나는 이런 말을 남겼어.

 

“파키스탄은 무슬림의 종교적 자유와 

문화적 자주성을 위한 나라다. 

그러나 우리는 관용과 포용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오래가지 못해.
진나는 1948년, 독립 1년 만에 사망하면서
파키스탄은 혼란 속에 지도자를 잃고
군부와 종교 보수 세력의 영향력이 커지게 돼.

5. 군사 쿠데타와 불안정한 정치

진나 사망 후,
파키스탄은 안정적인 민주주의를

유지하지 못하고
잦은 정권 교체와 군사 쿠데타에 휘말려.

 

1958년 첫 군사 쿠데타,

아유브 칸 장군이 권력을 장악했어.

 

이후에도 무샤라프, 지아 울 하크 등

군 출신 대통령 다수 등장하였고 

선거는 있었지만, 민간 정부는 늘 약했고

종교 보수주의가 강하게 정치에 개입했지.

6. 언어 차별과 동파키스탄의 분리 – 방글라데시 탄생

파키스탄은 처음엔 동서로 나뉜 나라였어.
그런데 서파키스탄 정부는

동파키스탄 사람들의 언어(벵골어)를 무시하고
우르두어만 공식어로 쓰겠다고 했어.

 

이건 곧바로 동파키스탄 사람들의 분노를 샀고,
결국 독립운동으로 번져.

1971년, 인도와 함께 동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로 독립 선언을 했어.

짧지만 격렬한 전쟁 끝에 파키스탄은 분단됐고 

100만 명 이상 사망, 또 한 번의

대규모 비극이 발생했지.

7. 분단에서 태어난 나라, 그 안의 이야기

파키스탄은
'신앙을 지키기 위한 나라'로 태어났지만,
그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어.

  • 군사정권과 민간정부의 교차
  • 종교와 정치의 경계 붕괴
  • 이웃 인도와의 영토 갈등
  • 내부 분열과 언어 차별

이런 문제를 안고도,
파키스탄은 여전히 자신만의 길을 찾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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