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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이야기]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내다– 인도의 민족운동, 그 첫 걸음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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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 제국은 사라졌고, 영국은 인도를

'문명화'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철저하게 통제하고 착취했지.


그런데 이 속에서, 조용히

깨어나는 사람들이 있었어.


“이 땅은 우리 것 아닌가?

왜 우리가 2등 국민처럼 살아야 하지?”


그 질문에서 시작된 게 바로

인도 민족운동의 시작이야.

1. 억눌린 땅, 그러나 깨닫기 시작한 사람들

19세기 후반, 인도는 완전히

영국 손에 들어가 있었어.

 

정치도 영국이 하고

교육도 영국식으로 바뀌고

공무원은 대부분 백인.

 

심지어 “인도인은 열등하다”는

인종차별까지 공개적으로 했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식 교육을 받은 일부 인도 지식인들이
바로 이 상황을 비판하기 시작해.

 

“영국이 우리에게 법과 자유를 가르쳤다면서,
왜 우리에겐 그걸 안 주지?”

 

이게 바로 민족운동의 씨앗이었어.

2. 인도 국민회의의 등장 (Indian National Congress)

1885년, 인도의 첫 전국적 정치 조직인
‘인도 국민회의(Indian National Congress)’,

줄여서 INC가 탄생했어.

 

초반에는 영국과 정면 충돌하지 않았고,

“우리도 목소리를 낼 기회를 주세요”라는

온건한 요구를 했지.

지도자들은 대부분 영국식 교육을 받은

힌두교 지식인들이었어.

 

대표적인 초기 인물은 다다바이 나오로지,

고팔 크리슈나 고칼레 등.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렇게 점잖게 말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느낀 사람들이 생겨.

3. 더 강한 목소리 – 급진파의 등장

1905년, 영국이 벵골을 종교 기준으로

나누겠다고 하자 인도인들은 분노했어.

 

“이건 힌두교와 이슬람을 갈라치기 하려는 거잖아!”

 

그래서 국민회의 안에서도
급진파(티라크, 라라 라즈파트 라이 등)가

생겨나서 '스와라지(Swaraj, 자치)',

즉 “우리가 우리를 직접 다스리자!”는

주장을 하기 시작해.

 

슬로건도 있었지.

“스와라지(자치)는 나의 권리이며,

나는 그것을 가질 것이다!”

이 무렵부터 불매운동, 자치운동,

민족 교육 운동 등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어.

4. 불씨는 계속 타오르고, 분열도 생겼다

하지만 쉬운 길은 아니었어.

국민회의 안에서도 온건파 vs 급진파 갈등

이슬람 지식인들은 “힌두 중심 단체에

속해도 되는가?” 고민을 했고,

 

영국은 이런 틈을 이용해

‘분열해서 통치하기’ 전략을 썼어.

그래서 1906년에는

무슬림 리그(Muslim League)가 따로 생기게 돼.


이는 훗날 '인도와 파키스탄 분단'의 시작이기도 해.

5. 그리고 등장한 인물 – 간디 이전의 간디들

우리가 흔히 '간디'만 기억하지만,
사실 그 전에도 엄청난 인물들이 많았어.

 

바랏 싱: 군사 반란 준비

라즈파트 라이: 교육 운동과 민족 계몽

비노바 바베: 무저항 운동 초안 실험

 

그리고 벵골 분할 반대운동은
인도 전역에서 영국 상품 불매, 전통 옷 입기,

인도어 사용 운동으로 퍼져.

 

사람들은 “자유는 말로 얻는 게 아니다”라고

느끼기 시작했지.

 

처음엔 영국에 예의 바르게 말하던 사람들이었지만,
점점 “이건 말로 될 일이 아니다”는 걸 알게 됐어.

 

그리고 인도인들은
자신의 문화, 언어, 정신, 주권을 찾기 위한 투쟁을
조금씩 조금씩 시작했어.

 

이건 단지 정치의 시작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시작이기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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