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 술탄국의 몰락
이제 중세 인도 역사에서
또 한 번의 큰 전환점,
'델리 술탄국의 몰락'과 그 뒤를 이은
위대한 제국,
무굴(Mughal) 제국의 등장 이야기를 해볼게.
델리 술탄국이 지배했던 인도 땅에,
중앙아시아에서 온 또 다른 침입자가
발을 디뎠고,
그는 단순한 정복자가 아니라,
인도 역사상 가장 찬란하고 복잡한
제국을 세운 건축자가 됐지.
사라진 건 왕조였지만, 흔들린 건 사람들의 삶이었다
델리 술탄국은 약 320년간
북인도를 지배했어.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늘 불안했지.
왕조가 5번이나 바뀌었고,
왕권은 약했고, 각지에 흩어진
영주(자민다르)들의 힘이 점점 커졌어.
외세의 침입도 잦았고,
행정은 무너지고, 백성들은 피폐해졌지.
특히 마지막 '로디 왕조(1451~1526)'는
왕위 계승 다툼과 내부 분열로
거의 무너질 지경이었어.
그 틈을 타고, 멀리 중앙아시아
사마르칸트 출신의 한 젊은 장군이
북인도의 문을 조용히 두드렸지.
바부르(Babur) – 티무르의 피와 징기즈칸의 혼혈
그의 이름은 바부르(Babur).
그는 몽골의 칭기즈칸의 피와
중앙아시아의 정복자 '티무르'의 후손이었어.
하지만 그의 현실은 다소 초라했지.
[중국이야기] 칭기즈칸 사후 4개의 제국 (2-2)
3. 차가타이 칸국 –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를 잡다지역: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서부 중국 일부세운 사람: 차가타이 칸 (칭기즈 칸의 둘째 아들)수도: 없음 (유목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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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인 페르가나에서 쫓겨나고,
사마르칸트도 지키지 못하고,
카불을 근거지 삼아 기회를 엿보고 있었거든.
그가 인도로 향한 이유는 명확했어.
“나는 조상처럼 대제국을 세우고 싶다.
인도는 혼란스럽고, 부유하고,
기회가 넘친다.”
1526년 – 파니파트 전투
운명의 해, 1526년.
바부르는 군사 약 1만 2천 명을 이끌고
델리의 술탄의 5개 왕조 중 마지막 왕조인
'이브라힘 로디(Ibrahim Lodi)'와
파니파트(현재 하리아나 주) 평야에서 맞붙어.
상대는 숫자도 많고, 코끼리도 데리고 왔지만
바부르에겐 당시 인도에 없던 무기,
화승총과 대포가 있었어.
결과는 압도적 승리.
이 전투를 끝으로 델리 술탄국은
역사의 막을 내리고,
'무굴 제국(Mughal Empire)'의 문이 열려.
바부르, 그리고 제국의 씨앗
바부르는 자신이 세운 나라를
그저 이슬람 제국으로만 만들지 않았어.
그는 페르시아어를 쓰며 문화를 사랑했고,
힌두 전통도 무시하지 않았고,
자신의 회고록 『바부르나마』를 남기며
정복자의 철학까지 남겼지.
그는 짧은 시간 동안
델리, 아그라, 라호르를 장악했고,
아들을 위해 기반을 다졌어.
이후 무굴 제국은
그의 손자 '아크바르 대제'를 통해
인도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으로 성장하게 돼.
무굴, ‘몽골’에서 이름을 따오다
‘무굴(Mughal)’이라는 말은
몽골(Mongol)의 페르시아식 발음이야.
그러니까 무굴 제국은
이름부터가 몽골+이슬람+페르시아 문화가
섞인 상징이었어.
그들은 중앙아시아의 군사 전통,
페르시아의 예술과 언어,
이슬람의 신념,
그리고 인도의 자원과 민심을 엮어
완전히 새로운 제국을 만들게 되지.
새로운 시대, 낡은 질서 위에 꽃피다
델리 술탄국이 무너졌다고 해서
힌두교와 이슬람의 갈등이 사라진 건 아니야.
하지만 무굴 제국의 시작은
단순한 정복이 아니라
섞임과 통합, 예술과 관용의
씨앗을 뿌린 시기였지.
바부르는 전쟁으로 인도를 얻었지만,
그 후계자들은 검보다 붓으로,
힘보다 정치와 문화로 제국을 키워가게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