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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이야기] 전차 위의 젊은 왕 –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의 제국 이야기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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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의 땅, 인도를 하나로 만들고 싶었던 사내

기원전 4세기,
인도의 북쪽 평야는 마가다, 코살라,

바치, 마츠야 같은 왕국들이
서로를 견제하고 전쟁을 반복하던 시대였어.

 

사람들은 늘 누군가에게 조공을 바쳐야 했고,
전쟁은 끊이지 않았고,
왕은 많았지만, 진짜 강력한 제국은 없었지.

그런 혼란한 시대 속에서
한 젊은이가 등장해.

이름은 찬드라굽타 마우리아.

 

그는 가난한 가문 출신이었지만
무모할 만큼 야망이 있었고,
그를 키워낸 스승은 바로
지금도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가,
카우틸리야(또는 찬키야)였어.

그의 배경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있었다

바로 그 무렵,
저 멀리 서쪽에서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 북서쪽까지 쳐들어왔어.


페르시아 제국을 무너뜨린 그 대왕이
히말라야 아래까지 들어온 거지.

 

하지만 알렉산더가 갑자기 죽으면서
그가 남긴 인도 서북부 지역은

권력의 공백이 생겼고,
찬드라굽타는 그 혼란을 기회로 잡았어.

 

그는 소규모 군대를 조직하고,
이전까지 누구도 건드리지 못했던

마가다 왕국을 공격했어.

그리고 결국, 기원전 321년경,

그는 왕위를 빼앗고
마우리아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인도 역사상 첫 대제국의 문을 열어버렸어.

제국의 시작 – 수도는 파탈리푸트라

찬드라굽타는 수도를 파탈리푸트라에 세웠어.
(지금의 비하르 주, '파트나'라는 도시야.)

 

그 도시는 강과 강이 만나는 비옥한 지점에 있었고,
정치, 상업, 군사 모두에 유리한 곳이었지.

 

그는 본격적으로 제국을 위한

관료 시스템과 군사 조직을 정비했어.

 

도로를 만들고 세금을 걷고

간첩과 정보망을 조직하고

도시에 시장과 행정청을 세웠지.

 

이건 단순한 왕국이 아니라
계획된 제국이었어.

 

그리고 그걸 도운 인물이
바로 그의 스승, 카우틸리야.

 

그는 『아르타샤스트라(Arthashastra)』라는
인도의 고대 정치 철학서를 남겼고,
이건 지금으로 치면
‘인도의 군주론 + 경제학 + 스파이교본’이야.

찬드라굽타는 정말 정복자였을까?

사실 그는 단순한 전쟁광은 아니었어.

 

그리스와도 외교를 맺고,
그들의 장군 셀레우코스와 싸운 뒤에는
결혼 동맹과 협상을 통해 땅을 얻었지.

그리스 사절 메가스테네스가
찬드라굽타의 궁전을 방문하고
인도의 체계적인 행정, 질서 잡힌 수도,

정연한 시장에 감탄했다는 기록도 있어.

 

그건 '혼란의 인도를 정리한 황제'라는 칭호가
그에게 괜히 붙은 게 아니라는 증거야.

황제의 마지막 – 뜻밖의 결말

제국을 세운 뒤,
찬드라굽타는 말년에
왕위를 아들에게 넘기고
자이나교 수도자가 되어 은둔했어.

그리고 극한의 고행 끝에

생을 마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어떤 기록에 따르면

음식을 끊고, 말도 하지 않고,

땅 위에서 누워 굶어 죽었다고 해.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지.

“칼을 쥔 사내가,
마지막엔 욕심을 놓고 진리를 따라갔다.”

첫 번째 황제가 남긴 것

찬드라굽타 마우리아는
인도의 혼란을 하나로 묶은 첫 번째 황제였어.

 

그의 뒤를 이은 아들은 아버지만큼 강하지 않았지만,
그 손자, '아소카 대왕',
그 이름은 인도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이름으로 남게 돼.

 

아소카는 칼링가 전쟁에서
엄청난 피를 흘린 뒤
칼을 버리고 불교로 돌아선 황제가 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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