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인도는 오랜 식민의 사슬을 끊고
드디어 독립을 선언했지만,
그 자유는 완전한 기쁨이 아니었어.
한 나라가 둘로 갈라지는 순간,
그 안에 살던 수천만 사람들의 삶도
찢겨지듯 나뉘게 되었지.
1. 독립은 모두가 원했지만, 같은 방식은 아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영국은 인도 지배에 더는 힘을 쏟기 어려웠어.
인도인들은 간디의 비폭력 투쟁과
곳곳의 민족운동으로 점점
통제 밖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영국도 더는 ‘인도를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었지.
그래서 1947년, 드디어 독립이 현실화돼.
그런데 문제가 있었어.
누가, 어떻게 이 나라를 이끌 것인가?
2. 힌두교도 vs 무슬림 – 단순한 종교 갈등이 아니었어
영국의 지배 아래,
힌두교도와 무슬림은 ‘인도인’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독립운동을 해왔지만,
사실 안에서는 계속 불신과 충돌이 쌓이고 있었어.
'힌두교도 중심'의 국민회의(INC)
'무슬림 중심'의 무슬림 리그
(Muslim League, 무슬림 연맹)
무슬림 리그는 말했지
“우리가 다수 힌두교도 사이에 섞여 살면,
우리의 종교와 문화는 보호받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파키스탄이라는 ‘무슬림만의 나라’를 원했어.
3. 결국 분단 – 파키스탄의 탄생
1947년 8월, 영국은 ‘분할 독립’을 허용하면서
하나의 인도가 두 나라로 나뉘게 돼.
하나는 힌두교 중심 다종교 국가인
인도공화국 (Republic of India).
또 하나는 무슬림 중심 국가인
파키스탄 (Islamic Republic of Pakistan).
파키스탄은 지리적으로도 특이했는데,
처음엔 서파키스탄(지금의 파키스탄)과
동파키스탄(지금의 방글라데시)으로
국토가 두 동강이 난 상태로 출범했어.
4. 갈라진 땅, 갈라진 삶 – 대이주와 학살
분단이 결정되자, 사람들은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이야?”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됐지.
무슬림들은 인도로부터 파키스탄으로,
힌두교도와 시크교도는 파키스탄에서 인도로
수천만 명이 강제 이주를 하게 돼.
이 와중에 종교 폭동, 보복, 학살이 벌어져.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이주 중 하나였고,
100만 명 넘게 사망했다는 기록도 있어.
“나라가 독립했는데, 내 집은 타올랐고,
내 어머니는 칼에 베였고,
내 형은 내 옆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
이건 자유가 아니라, 절규에 가까운 출발이었어.
5. 간디의 마지막 길 – 피를 멈추려 했던 사람
이 혼란 속에서 '간디'는
힌두교도와 무슬림 사이에서
평화를 호소하며 단식투쟁을 해.
하지만 그의 평화 메시지는
극단주의자들에겐 배신처럼 느껴졌지.
결국 1948년 1월,
한 힌두 극우 청년의 총에 맞아
암살당하고 말아.
그의 죽음은 인도의 양심이
사라진 날이기도 했어.
6. 그 후의 이야기 – 분단의 그림자
파키스탄과 인도는 이후
여러 차례 전쟁을 벌이게 되고,
'카슈미르' 영토 문제는
지금도 갈등의 뿌리가 돼 있어.
그리고 동파키스탄은 나중에
1971년 방글라데시로 독립하면서
한 나라에서 시작된 파키스탄도 또 나뉘게 돼.
마무리 – 자유란, 그렇게 쉽게 오는 게 아니었다
1947년 8월 15일, 하늘은 분명히
축제의 폭죽으로 가득했지만,
땅 위엔 이별과 죽음, 분노와 눈물이 흘렀어.
인도는 독립했지만,
그 독립은 모두가 웃을 수 있는 결말은 아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