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식민체제 속에서도
지식인, 학생, 종교인, 여성들까지 나서며
민족주의와 독립운동의 물결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시대, 즉 근대 민족운동의
시작이 일어났어.
오랜 식민지 억압 속에서 처음으로
“우리도 나라를 세울 수 있다”는 희망이
피어나던 시기,
즉 근대 민족운동의 시작!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부디 우토모(Budi Utomo)’,
그리고 그를 비롯한 지식인 세대의
자각과 실천이야.
19세기 말~20세기 초,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네덜란드의 식민지였지만
그 안에서 작은 변화의 불씨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어.
그 중심엔 서양 교육을 받은 현지 엘리트,
즉 신지식인층이 있었지.
이들은 식민 정부가 만든 학교에서
과학, 역사, 철학, 정치 같은 걸 배우며
“우리는 왜 조국도 없이 남의 지배를 받고 있지?”
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어.
그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자 인도네시아 민족주의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사람이 바로
쇠와르디 쇠르자닝랏 (Suwardi Suryaningrat),
즉, 키 하자르 드완토로(Ki Hajar Dewantara)야.
Ki Hajar Dewantara - Wikipedia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Indonesian activist, politician and educator (1889–1959) Ki Hajar DewantaraKi Hajar Dewantara in 1949In office2 September 1945 – 14 November 1945PresidentSukarnoPreceded byOffice createdSucceeded byTodung Sutan 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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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위키디피아 영어
그는 나중에 ‘국민 교육의 아버지’가 되지만,
이 시기에는 독립과 교육을 하나로 묶은 사상가로 활동하지.
1908년, 드디어 인도네시아 역사상 첫 민족주의 단체,
부디 우토모(Budi Utomo)가 결성돼.
‘부디’는 지혜, ‘우토모’는 고귀한,
즉 '고귀한 이상을 추구하는 모임'이라는 뜻이지.
이 단체는 자바섬 중심의 지식인 청년들로 구성됐고
처음엔 문화와 교육 향상에 집중했지만
점점 ‘민족 전체의 단결’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갔어.
중요한 건, 이 운동이 총이나 무기를 들고 싸운 건
아니지만, 생각의 전환,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다”는
자의식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거야.
이때까지는 자바인, 수마트라인, 아체인 ,
술라웨시인처럼 자기 섬, 자기 민족 단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우리 모두가 인도네시아인”이라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한 거지.
(아체: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북서쪽 끝에 있는 지역.
면적은 5만 8375km²으로 한국의 절반이 조금 넘는 크기
_출처나무위키)
그리고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 흐름은 더 커져.
- 청년 인도네시아 조직들
- 여성 해방 운동
- 무슬림 지식인 조직들
- 노동조합과 농민 단체들
심지어 1928년에는 ‘청년 서약(Sumpah Pemuda)’
이라는 선언을 통해 “우리는 하나의 조국, 하나의 민족,
하나의 언어를 가진다”는 인도네시아
민족주의의 헌장 같은 것이 발표돼.
이 시기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세 가지야.
- 교육 – “배워야 나라를 바꾼다”
- 단결 – “섬과 종교, 계층을 넘어 하나가 되자”
- 정신 – “우리는 식민지인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이다”
이러한 바탕이 있었기 때문에,
곧 등장하게 될 수카르노, 하타, 탄 말라카, 수판디오 같은
진짜 정치적 리더들이 독립운동의 대중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