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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이야기] 27. 이스라엘 건국(1948) – 유엔 결의와 아랍 국가의 반발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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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 돌아갈 ‘집’을 원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유대인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었어.
유럽에서 학살을 피해 겨우 살아남은 이들은
가족을 잃고, 집을 잃고, 고향에서도 환영받지 못했지.
"우린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이 질문은 수백만 명의 유대인의 가슴을 찔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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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다시 돌아갔어.
자신들의 조상 땅이라 믿었던 팔레스타인으로.
오랜 세월 동안 ‘약속의 땅’이라 불려왔던 곳이었지.
이미 1800년대 후반부터 시온주의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며
유대인 정착촌이 하나둘씩 세워지고 있었어.
하지만 이 지역에는 이미 수백만 명의 아랍계 주민들이 살고 있었지.

2. 영국의 곤란한 입장과 국제사회의 개입

팔레스타인은 원래 오스만 제국의 일부였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이 위임 통치하게 되었어.


처음엔 영국도 유대인에게 호의적이었지.
**벨푸어 선언(1917)**에서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을 세우는 걸 지지한다"고 밝혔거든.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상황은 복잡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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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인과 유대인 간의 갈등이 폭력으로 번지고,
두 민족이 서로를 향해 테러를 일삼기 시작했지.
영국은 더 이상 이 문제를 통제할 수 없었고
결국 1947년, **유엔(UN)**에 중재를 요청하게 돼.

3. 유엔의 분할 결의안 – 두 민족, 두 국가?

1947년 11월 29일,
유엔 총회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돼.
팔레스타인을 아랍국가와 유대국가로 분할하자는 안건이었어.

  • 유대인: 전체 면적의 약 55%를 차지하는 지역
  • 아랍인: 약 45%
  • 예루살렘: 유엔의 국제 관리 지역

이 결의안은 표결 끝에 통과되었어.
찬성 33, 반대 13, 기권 10.
유럽 국가들과 미국, 소련 등이 찬성했고
아랍 국가들은 단호히 반대했지.

유대인들은 이 소식을 듣고 환호했어.
자신들의 국가를 가질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반면 아랍계 주민들과 주변 아랍 국가는
이 결정을 불법으로 간주했어.
“팔레스타인은 우리 조상들의 땅이다!
왜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 우리의 땅을 나눠 갖느냐!”
그들의 반발은 점점 격해졌지.

4. 1948년 5월 14일 – 이스라엘, 독립을 선언하다

영국은 1948년 5월 14일부로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를 종료한다고 선언했어.
그 틈을 타 유대인 지도자 **다비드 벤구리온(David Ben-Gurion)**은
같은 날, 텔아비브 박물관에서
**“이스라엘 독립 선언”**을 발표했지.

“이 나라는, 유대 민족의 조국이 될 것이다.”

이 발표는 전 세계에 방송으로 퍼졌고,
미국은 불과 몇 분 뒤,
소련은 하루 뒤에 이스라엘을 국가로 승인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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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어.

독립 선언 하루 뒤,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이라크
아랍 5개국이 연합해 이스라엘을 침공한 거야.
바로 1차 중동전쟁의 시작이었어.

5. 피로 얻은 독립, 그리고 새로운 갈등의 시작

이스라엘은 이제 막 세워진 나라였고,
정규 군대조차 제대로 없었어.
하지만 유대인들은
2차 세계대전 중에 쌓은 군사 경험,
체계적인 무기 지원망,
무엇보다 절박한 생존 의지로
압도적인 아랍 연합군을 막아냈어.

결국 1949년, 유엔 중재 하에 정전 협정이 맺어졌고
이스라엘은 당초 유엔이 분할했던 지역보다 더 넓은 영토를 확보했지.
반면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국가를 세우지 못한 채 난민으로 전락했어.

 

요르단은 **서안지구(West Bank)**를

이집트는 **가자지구(Gaza Strip)**를
차지했지만, 팔레스타인이라는 국가는 탄생하지 못했어.

 

이스라엘의 독립은
유대인들에게는 2천 년 만의 꿈이 실현된 순간이었지만,
팔레스타인과 아랍 국가들에겐
수치와 상실, 분노의 시작이었지.

이 날 이후,
중동이라는 땅은 더 이상 평화롭지 않았고
수십 년간 이어질 갈등과 전쟁의 씨앗이
여기서 뿌려진 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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