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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이야기] 24. 시온주의의 탄생 – 테오도르 헤르츨과 유대국가의 꿈

by 지금이순간마법처럼 2025.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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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대인의 오래된 꿈, ‘시온’으로 돌아가다

유대인들에게 ‘시온(Zion)’은 단순한 땅이 아니었어.
예루살렘, 그리고 그곳에 세워졌던 성전,
그 모든 것이 곧 신과의 약속이자 민족 정체성의 상징이었지.

바빌론 유수 이후에도, 로마의 박해 이후에도,
그들은 언제나 이렇게 말했어.
내년엔 예루살렘에서!

하지만 그 말은 기도이자 바람에 불과했지.
실제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은 오랜 세월 거의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였거든.

그러던 중, 19세기 말의 유럽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반유대주의가 퍼지기 시작했어.
예전의 종교적 박해가 아니라,
인종주의에 기반한 정치적 배제와 폭력이었지.

바로 그 지점에서,
한 명의 오스트리아 유대인이
전 세계 유대 민족의 꿈을 깨우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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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테오도르 헤르츨 – 변호사이자 언론인, 그리고 비전가

**테오도르 헤르츨(Theodor Herzl)**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유대인 지식인이었어.


직업은 언론인이었고, 그는 유럽 곳곳의 사회 흐름을
민감하게 분석하고 보도하던 사람이었지.

1894년, 프랑스에서 드레퓌스 사건이 터졌어.
한 유대인 장교가 군사 기밀을 독일에 팔았다는 누명을 쓰고
군사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지.

프랑스는 계몽주의와 인권의 나라였지만,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건 민중의 집단적 반유대주의였어.
거리에선 "죽어라 유대인!"이라는 구호가 난무했고,
헤르츨은 그 현장을 목격하면서 이렇게 결심하게 돼.

“유대인은 어디서나 소수이며, 언제나 희생양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안전하게 살기 위한 길은 오직 하나,
우리 스스로의 국가를 갖는 것이다.”

3. 『유대국가』의 출간과 정치운동의 시작

1896년, 헤르츨은
Der Judenstaat(유대국가)』라는 책을 발표해.
이 책에서 그는 아주 명확하게 말하지.

  • 유대인은 단순한 종교 집단이 아니라 민족이다.
  • 그러므로, 민족은 민족의 고향이 필요하다.
  • 그것은 팔레스타인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곳이라도 좋다.
  • 중요한 건, 전 세계 유대인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자치적 공간이다.

이 글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어.
누구도 유대인을 ‘국가를 이룰 민족’으로 생각하지 않던 시절에,
그는 그야말로 꿈같은 말을 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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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1차 시온주의 회의 – 국제적 조직의 탄생

1897년, 스위스 바젤에서
제1차 세계 시온주의 회의가 열려.
유럽 전역에서 몰려온 유대인 대표자 200여 명이
자신들의 나라 없이 떠도는 현실을 직시하며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세운다’는 목표를 선언하게 돼.

헤르츨은 회의 후 이렇게 기록하지.

“오늘 바젤에서 나는 유대 국가를 세웠다.
사람들은 지금은 그걸 믿지 않겠지만,
5년 후면 어렴풋이 보일 것이고,
50년 후면 현실이 될 것이다.”

그의 말은 예언처럼 맞아떨어졌지.
정확히 50년 후인 1947년, 유엔은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채택했고,
그 다음 해,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했으니까.

5. 내부의 분열과 외부의 회의

물론 모든 유대인이
헤르츨의 시온주의에 열광한 건 아니었어.

  • 유럽 사회에 동화된 유대인 지식인들은
    “굳이 민족 국가가 필요하냐”며 회의적이었고,
  • 전통적 유대교 지도자들은
    “메시아가 오기 전엔 이스라엘을 세울 수 없다”며
    종교적 반감을 드러냈지.

한편 팔레스타인 땅에서 이미 살고 있던
아랍계 주민들과의 갈등 가능성도 이미 거론됐어.
일부 유대인은 우간다 대안론을 지지하기도 했고,
‘아프리카 어딘가에 유대 국가를 세우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 여긴 사람도 있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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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헤르츨은 끝까지
조상들이 살았던 땅”인 팔레스타인을 고집했고,
그 꿈은 곧 ‘역사적 정통성’을 내세운 강력한 동력이 되었어.

6. 헤르츨 이후 – 현실이 되어가는 꿈

1904년, 헤르츨은 4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어.
짧은 생이었지만,
그가 남긴 아이디어는 이후 수많은 유대인의 삶을 바꾸게 되지.

그의 죽음 이후에도
**세계 시온주의 기구(WZO)**는 활동을 이어갔고,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 이민과 정착촌 설립이 시작됐어.

‘헤르츨의 꿈’은 이제 민족의 과업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이것은 향후 영국의 벨푸어 선언으로 이어지며
현실로 다가오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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